이희성 교수 |
지난 5월 대전시는 민선 8기 대표적인 문화정책으로 '문화시설 확충방안'을 발표하였다. 지역예술인을 위한 전시·공연시설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일부 문화공간에 대한 행정절차를 시작한 데 이어 하반기부터는 사업 설계를 추진하는 등 속도를 내고 있다.
추진되는 사업을 살펴보면 제2시립미술관, 음악전용공연장, 원로예술인 특화전시관, 제2대전문학관, 다목적전시관, 복합문화공간, 웹툰 콘텐츠 클러스터, 융복합 특수영상 콘텐츠 클러스터 등이다. 대전 중구 중촌근린공원에 조성되는 '제2시립미술관'과 '음악전용공연장'의 경우 추경안에 반영된 용역비가 확정되는 대로 관련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이러한 문화예술 인프라 확충에 필요한 예산은 총 6700억 원에 이른다. 특히 원도심에 4500억 원을 집중투자해 신·구 도심 간 문화격차를 해소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수천억 원에 달하는 사업비가 소요되기 때문이다. 균형발전특별회계 사업들이 지방으로 이양되면서 문화시설 건립 사업의 경우 대부분 지방비에 의존해야 한다. 지방재정의 한계와 문화예산의 범위에서 인프라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면, 기초예술창작 등 예술진흥활동에 필요한 보조금 등은 상대적으로 대폭 삭감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러한 우려는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건설 사업비가 1조 4000억 원으로 대폭 늘어난 데다 각종 개발 사업들이 줄줄이 예정된 만큼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을 위한 예산 확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문화격차 해소라는 목표를 이야기하지만, 보여주기식 문화시설 건립에 불과하다. 왜 이 시점에서 수천억을 들여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문화인프라 건설이 필요한지 구체적인 설명이 빠져있다. 문화시설 확충에 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 기준이 없다 보니 설득력이 떨어진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원도심 등 특정 지역 힘 실어주기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선거철이 되면 문화격차 해소는 지역 공약으로 부상하지만, 번번이 추진이 막혀 주민들에게는 희망 고문만을 주고 있었다.
또 다른 문제는 대전시의 문화정책은 여전히 관 주도의 '톱다운' 방식이다. 시민과 지역문화예술인을 적극적인 문화 주체로 보지 않고, 단순 향유자와 공급자로 한정한 채 문화시설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미 타 지역에서도 일부 이해관계자의 요구와 행정성과주의로 문화시설 확충을 결정하다 보니 충분한 조사와 검토 없이 남발되는 사례가 많다. 그 결과, 시설 중복이나 비효율적 운영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한 운영·관리비용은 모두 시민의 세금으로 충당된다.
그리고 지역문화진흥정책에 가장 핵심적인 영역인 생활문화 및 지역문화에 대한 정책의 비전과 방향성도 없다. 문화정책의 범위를 경쟁력과 부가가치 창출의 수단으로서만 한정하고 있다. 대규모 문화시설보다는 창의성과 예술성을 높이고 시민의 문화적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생활권 단위의 문화인프라에 주목해야 한다. 문화시설의 기능도 기존의 창작과 발표 및 유동 중심에서 지역주민과의 교류, 교육을 통한 시민의 문화적 역량 강화, 문화거버넌스의 현장으로 변화해가는 중이다. 단순히 문화시설이 많다고 좋은 도시로 평가받던 시대는 가고 없다.
대전시의 문화정책 역시 거시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의식과 철학 그리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대전이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지역문화 환경의 특징과 변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문화주체와 미래 지향적인 문화의 형성 방향, 마지막으로 문화를 통한 사회적 위기 대응 등의 전략이 문화정책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의 문화행정 시스템의 개혁과 혁신이 필요하다. 이미 반복적으로 실패를 경험해온 하드웨어 중심의 문화인프라 확충과 경제적 도구화 전략으로는 도시의 창의성과 예술성은 결여되고, 다가오는 지역문화시대를 제대로 준비할 수 없다.
/이희성 단국대 정책경영대학원 문화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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