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노인을 위한 변명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노인을 위한 변명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 승인 2023-08-07 08:40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송복섭 교수
요즘이야말로 세대 간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심하지 않나 싶다. MZ 세대라는 말로 젊은 사람들의 행태를 조롱하고 '노 시니어 존'으로 나이 든 사람들을 배척하는가 하면. 산업화 세대와 586세대가 정치적 쟁점을 매개로 심하게 대립한다. 메소포타미아 점토판에도 새겨져 있다는 "요즘 애들 버릇없다"라는 기록을 봐도 세대 간 갈등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짐작이 가지만, 인류 역사상 평균수명이 가장 늘어난 이 시대야말로 넓은 대역의 여러 세대가 공존하는 그동안 경험 못한 세상이 펼쳐져 있다.

예전엔 어른 세대가 어린 세대를 나무라는 게 일반적이었다면 요즘의 세대 갈등은 어린 세대가 노인을 공격하는 양상을 보인다. 안정적인 사회가 계속되고 평균수명이 괄목할 만하게 늘어나며 기득권을 확보하려는 경쟁 중에 세대교체가 늦어지면서 젊은층이 답답한 울화를 기성세대보다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노인을 공격하는 모양으로 나타내고 있다. 은퇴한 노인세대를 사회에 이바지하는 바가 적은 잉여세대쯤으로 바라보는 편견이 만연한 것이다.

옛날 바이킹들은 곤궁한 계절이 닥치면 노인들을 ‘자살바위’로 내모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노인을 유기하는 일은 중국을 비롯해 유럽과 아프리카 등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고 하는데 역사적인 기록보다는 대개 이야기가 더해져 설화의 형태로 남아있다. 우리도 '고려장'이라는 전설이 있어 늙은 부모를 지게로 져 깊은 산중에 버리려 하자 아들이 나중에 아버지 때 사용할 거라고 지게를 챙기는 바람에 아버지가 잘못을 깨닫고 그만두었다고 하지 않던가. 얼핏 늙고 병든 노인은 사회에 짐이 된다는 생각에 이런 만행들이 생겨난 거라고 짐작한다.

윤리적 판단은 차치하고라도 함께 나눌 식량이 부족하고 노동력이 생존에 절대적인 시대에는 그럴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지식과 경험이 자산이 되는 이 시대에는 실질적으로도 인생을 살면서 터득한 지혜가 소중하게 쓰일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고려장과도 비슷한 일본 ‘우바스테’ 설화에는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하는 노인을 산에 유기하라고 영주의 명을 받았지만 자식으로서 차마 그럴 수 없어 마루 밑에 숨겼는데, 어려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쳐들어오겠다는 이웃 영주의 협박을 노인의 지혜로 해결한 다음부터 노인들을 소중히 대우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평균수명 90을 바라보는 지금 인생의 삼 분의 일을 무력한 노인으로 취급하며 소외하는 것은 분명 온당치 않다.



노인 혐오의 배경에는 노인의 책임도 적지 않다. 오랜 삶에서 터득한 경험을 무기로 권위를 앞세워 강제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떳떳하지 않은 노련한 처세를 삶의 지혜라 강변하지는 않았는지, 남을 배려하기보단 엉뚱한 고집과 파렴치한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았는지, 체면과 명예를 소중히 하기보단 욕심과 몰염치로 일관하지 않았는지……. 모두 살펴볼 일이다.

노인들도 억울함을 호소한다. 전후 국가가 책임져 주지 못하는 황폐한 환경 속에서 산업화의 기적과 선진국의 기틀을 만든 주역인데, 사회는 인정해주려고도 고마워하지도 않는다는 서운함과 자괴감이 ‘태극기부대’와 막무가내 민폐 행동으로 항변하게 만들지 않았는지? 상대를 배려하는 공동체 의식과 문화생활을 배울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는데, 세상이 달라졌으니 선진국 시민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살라고 주문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은 아닌지?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교육하느라 자신을 위해 재산을 모으거나 연금을 부을 기회도 마련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자식조차 버거워하는 세상으로 내몰고 있지는 않은가?

이참에 애처로운 공공근로가 아닌 노인을 위한 멋진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시니어 모델 인기가 높아가듯이 노인을 위한 미용과 패션산업도 활발했으면 좋겠고 소일거리로 취미교실 수준이 아닌 생산적이고 보람 있는 교육과정이 곳곳에서 많이 운용됐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여유 있는 노인들이 지갑을 열어야 한다. 실버산업이 발달하기 위해선 소비시장이 그만큼 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가지고 있어 봐야 자식이나 나라가 가져갈 거 아닌가? 사회는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노인을 대하고, 노인은 젊은이를 호통쳐 가르치는 대상이 아닌 자애로 지혜를 전하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노인은 바로 내일의 우리다.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