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윤 기자. |
많은 이들은 신림역 묻지마 칼부림 사건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쌓여 가는 피로감에도 "혹시 내가 오늘 가는 곳이 위험한 거 아닐까?"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살인 예고 글들을 찾아볼 수밖에 없다.
며칠 전 밤에도 잠들기 전 올라온 기사들을 훑어보며 수많은 흉기 난동 예고 글을 살펴봤다. "설마 우리 지역에 그런 일이 있겠어".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불안한 상황 속에서 홀로 안심해야 했다.
꾸역꾸역 담아 온 헛된 생각은 10시간 만에 쏟아졌다. 4일 금요일, 다른 취재를 위해 현장을 가던 도중 평소 연락하던 한 소방관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김 기자, 오늘 대덕구에서 칼부림이 있었대".
전달받은 내용은 사실이었다. 이날 오전 10시 3분, 대덕구의 한 고등학교에 침입한 외부인이 40대 교사를 흉기로 찔러 피해자는 위중한 상태였다.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는 살짝 무섭기도 했다. 흉기를 든 범인이 대전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인데, 혹시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친구들과 부모님에게 급히 문자를 보내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잇따르는 칼부림, 예고 글에 겁이 없어야 한다는 사건 기자인 나는 '쫄보'가 돼 버렸다.
토요일 나는 동기와 목원대학교에서 열린 워터밤 행사를 다녀왔다. 다행히 곳곳에 안전요원이 배치돼 있었고, 입구에서부터 입장객들의 소지품을 꼼꼼히 점검했다. 그럼 에도 불안감은 씻기지 않았다.
공연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 사이에 둘러싸일 때도, 인파 속을 헤집고 걸어 다닐 때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앉아 휴식을 취할 때도, 나는 주변을 살피며 눈치 아닌 눈치를 봐야 했다.
무뚝뚝한 아빠도 나와 같은 마음인 듯, 나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건넸다. 후추 스프레이, 3단 봉, 호루라기. 작은 상자 안에는 호신용품들이 들어 있었다. "딸, 사건 기자는 위험한 곳 많이 가잖아. 딸이 그런 곳 갈 때마다 아빠는 항상 불안해. 꼭 가지고 다녀"라며 애써 웃고 있었다.
안전해야 할 사회가 무너지고 있다. 호신용품을 구매하고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등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다들 안간힘이다. "우리 제품을 사용할 일이 없길 바란다"는 호신용품 판매자의 말처럼 불안감에 빼앗긴 일상을 하루빨리 돌려받길 바란다.
김지윤 사회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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