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뉴스라도 볼라치면 눈살 찌푸리게 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새파란 젊은 의원이 장관에게 "배우지 못하신 것 같아서 안타깝다."거나 "무능하고 사악하다" "대통령의 존재가 사회적 위협"이라고 한다. 말하는 사람보다 상대가 훨씬 많은 지식과 도덕성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한데 말이다. 막말뿐인가, 삿대질에 호통, 안하무인(眼下無人)이다. 알량한 자리 하나 차지했다고 세상이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노인폄하 발언으로 지난 일주일이 떠들썩했다. 본인은 노인 폄하 용의가 없었고 젊은이에게 투표장에 나오라는 의도였다고 한다. 행간을 살펴보면 그 반대로 읽힌다. 방점은 노인폄하에 있고 '투표참여'는 속내를 가리기 위한 포장에 불과하다. 위장 표현이자 교활한 말장난이다. 중학생 아들에 기대어 "왜 나이 든 사람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느냐" "자기가 생각할 때는 평균 연령을 얼마라고 봤을 때 자기 나이로부터 여명까지, 엄마 나이로(부터) 여명까지로 해 비례적으로 투표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되게 합리적이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대 1로 표결해야 하나" "합리적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1인 1표'로 선거권이 있어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투표장에 젊은 분들이 나와야 그 의사가 표시된다고 결론지었다"고 해명했다. 마지막에 덧붙인 말은 앞의 말과 관련이 없지 않은가? 투표 참여의 중요성을 논하면 될 일이지, 뜬금없이 노인은 왜 껴 넣는가? 왜, 노인에 대한 적개심을 심어주는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화자는 생략하고 몇 개만 들춰보자. "촛불집회 중심에 젊은이들이 있었고 미래는 20대와 30대의 무대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한걸음만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60대와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 그분들이 꼭 미래를 결정해 줄 필요는 없단 말이에요. 그분들은 어쩌면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그 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되고…." "교포 노인들이 연세가 들어서 곧 돌아가실 거다. 노인들이 무슨 힘이 있겠냐." "비록 30대에 훌륭한 인격체였을지라도 20년이 지나면 뇌 세포가 변해 전혀 다른 인격체가 된다." "인간의 뇌세포는 그러니까 노화라는 것은 20세가 지나면 바로 시작됩니다. 한 50대 접어들게 되면 죽어 나가는 뇌세포가 새로 생기는 뇌세포보다 많습니다. 사람이 멍청해집니다."
나이 먹는 것이 자랑은 아니다. 노인이 갖는 사회적 역할, 그동안 국가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노인은 움직이는 도서관, 박물관이라고도 한다. 더해서 풍부한 지혜와 경험이 있다. 노마지지(老馬之智) 아닌가? 때로는 노인의 지혜와 역할도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나이가 쌓이는 것은 순리이요, 흐름이다. 먹고 싶어 먹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어린아이가 노인 되는 것은 너무도 쉽다. 순식간이다.
순리하면 물 아니겠는가? 상선약수(上善若水),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거기에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남에게 이로움을 주는 미덕, 다투지 않는 포용과 사랑이 담겨있다. 하지만, 물을 물로 봤다간 큰 코 다친다. 행태조차 없지만 성나면 막을 재간이 없다. 물은 생명의 근원 중 하나이지만, 생명체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생명에 위해를 가했다고 물의 잘 못은 아니다. 물 자체에 무슨 잘못이 있으랴? 순리를 거스른 사람 잘못이다. 함부로 방해하거나 왜곡, 막아서 생기는 일이다. 억지로 압력이 커져 둑이 무너지면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옛사람은 백성의 입도 물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입 역시 막기 어렵다. 막는 것 자체가 패망의 길이기도 하다.
하나 더 덧붙이자.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말이다. "입을 막는 것은 물을 막는 것보다 심각하다. 물이 막혔다 터지면 다치는 사람이 분명 많다. 백성 또한 이와 같다. 때문에 물을 다스리는 자는 물이 흐르게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그들의 입을 열어 말 하게 하는 것이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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