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변호사. |
법은 재미있게도, 일정한 인간의 '행위'의 원인을 인간의 '의사'에서 찾는다. 좀더 일상적인 말로 하자면, "네가 그러한 행동을 한 데에는 다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한다는 뜻이다(그래서 법을 처음 공부하는 학생들이 듣는 수업과목인 민법총칙 시간에 '의사'를 다시 '행위의사', '표시의사', '효과의사'등으로 구분해 배우는데, 사실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이러한 법의 논리에는 인간의 선택이 합리적일 것이라는 일종의 가정이 깔려 있다. 법을 처음 공부할 때는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다가도, 오랜 시간 동안 비슷비슷한 내용을 반복하게 되는 변호사들은 알게 모르게 위와 같은 '가정'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여기에는 일정한 의도가 깔려 있다. 법은 인간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그 행위를 한 인간에게 귀속시키고자 하는데, 누군가의 행위가 그 사람의 책임이 되기 위해서는 '다 알고 선택한 게 아니냐'라는 전제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생각은 사실 근대의 발명품인 '합리적 인간'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는 점심시간에 나가서 밥을 사서 먹을 때도 무엇을 먹으면 맛있을지, 또 그게 얼마인지를 계산하는 일(경제학에서는 이를 기회비용 같은 말로 설명한다)을 일상적으로 반복하고 있으므로 법의 이러한 가정은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변호사로서 다른 사람들의 역사적 사건을 듣다 보면 상당히 많은 경우에 '그때 그 사람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잘 알기 어려운 때가 있다(알기 어렵다는 것은 청자인 내가 화자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화자가 그 당시에 딱히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간단한 예를 들면, A가 몇 월 며칠 B에게 1억 원의 돈을 주었다는 사실은 명확하지만, A가 B에게 그 돈을 준 이유가 무엇인지(빌려준 것인지, 투자를 한 것인지), B가 돈을 돌려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A도 알고 있었는지(위험 발생의 예상 가능성), B가 돈을 돌려주지 못하게 될 경우 책임은 누가 지기로 한 것인지가 언제나 명확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법이 생각하는 '역사적 사실'은 단순히 일어난 사실이라기보다 누가 어떤 의도로 이러한 행위를 했는가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행위자의 의도 자체가 불분명한 경우 사실 자체를 확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럴 때면 사람들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행동을 하는 것이라는 법적 전제 자체가 맞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쁘게 말하면 사람들은 '결과가 좋다면 그 결과는 나의 것이 되어야 하지만. 상황이 나빠진다면 그 책임까지 내가 지기로 한 것은 아니다'라는 정도로 생각하기도 하고, '사실은 내가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닌데 상대방이 오해를 한 것이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선택에 대한 책임. 말은 쉽지만, 전혀 쉽지 않은 이야기이다. 변호사가 되고 나서 가장 무겁게 다가오는 말이기도 하다. 한편 모든 결과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 사회적으로 옳은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개인으로서 나는 하루에도 무수히 내려야만 하는 다양한 선택들을 늦지 않게 내리는 일이 늘 피곤하다. 변호사로서 나는, 법이 그토록 인간의 의사를 중요시하는 것이, 행위의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기 위한 방법이고, 이를 통해 사회를 유지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물론 때로는 가혹하며 부당하다고 여겨질 때도 있다. 어쩌면 변호사는 그 사이에서 구체적인 사실을 발견하고 거기에 맞는 타당한 해결책을 찾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진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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