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최근 사망한 피해자를 위해 묵념하고 있다. /사진=이성희 기자 |
대전시청에 모인 지역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가 지금보다 커져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 이르기 전에 정부가 적극적인 구제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기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매달 등기를 떼고 전입세대원을 확인했어도 서류를 조작해 공인중개사와 임대인이 짜고 조직적으로 벌이는 일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사연을 털어놨다.
7월 31일 만난 전세사기 피해자 A(37)씨는 2020년 11월 대전 동구 다가구 주택을 1억5000만 원에 전세 계약했다. 10년 차를 맞은 회사에서 대전지점으로 인사발령을 받아 거주할 주택을 찾아 여러 곳을 살핀 끝에 가장 최근에 지어진 다가구 주택에 2층을 선택한 것이다. 물건을 소개한 공인중개사는 12가구 중 앞서 두 가구가 전세이고, A씨가 마지막 전세 입주자이자 나머지는 모두 월세를 놓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총 3억 원뿐인 선순위 임차보증금 확인서를 보여줬고,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물론, A씨가 중개사의 말만 따른 것은 아니고, 주변 시세와 건물가치 대비 전세가율 등을 검토했다. 그러나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지 2년 지났을 때 해당 다가구주택에 경매 절차가 개시되면서 전세사기가 벌어졌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나머지는 월세계약 이라던 공인중개사의 말과 다르게 12세대 모두 전세 계약자였고,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지급해야 할 보증금도 3억 원이 아니라 20억 원이었다. 이들 임차인은 임대인과 공인중개사를 형사고발 했으나, 피해보상은 이뤄지지 않았고 내달 예상되는 경매에서도 금융기관에 치여 채권 회수가 어려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A씨는 "회사 덕분에 정착한 대전에서 전세사기에 휘말리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고, 현재 정부의 대책도 다가구주택에는 혜택이 없어 피해자들이 민사소송으로 앞으로도 1년 이상 긴 싸움을 하게 될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전화로 연결된 또 다른 피해자 B(33) 씨는 전세금 1억30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한 채 경매에 붙여질 위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 대덕구의 한 다가구 주택을 신혼집으로 마련했으나 역시 2년만에 전세사기 일당의 깡통주택이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B씨는 대전에서 발생한 전세사기 소식에 귀 기울이며 전세 계약 때 건물가격을 공인중개사가 계약서에 명시하게 하고, 확정일자를 받고 매달 등본을 떼어 전출입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했으나 전세사기 파도를 피하지 못했다. 그는 지금처럼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사인 간 계약관계에서 발생한 일부의 피해로 계속 치부된다면 전세에 대한 불안은 잦아들지 않아 내년에 더 큰 대란이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B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피해자가 자꾸 발생해 누적되고 있는데 어느 시점에 피해확산을 차단하지 않으면 전세 기피현상 탓에 선량한 전세물건에서도 보증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상황이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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