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민혜 문화재 전문위원 |
과감하게 돌출된 수직 부재와 그 내부를 다시 리듬감 있게 분절한 가로 부재. 그리고 그것들을 상냥한 리듬감으로 지그시 눌러주는 육중한 파라펫(최상증의 벽면). 건축물의 삼면이 모두 이 같은 수직 모듈로 반복되는 가운데, 비탈길 방향으로 살짝 치우쳐 낸 정문은 이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의 발길을 친절히 이끌어준다. 건축가의 정교하고 섬세한 손길로 만들어진 이 모든 건축적 조작들은 단조롭지만 조형적이고, 엄중하지만 경쾌한, 이율배반적이지만 흥미로운 이 건물만의 독특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철골과 유리로 지어진 커튼월 구조 아니면 이리저리 매스를 분절시켜 공간감을 살리는 건축물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에 이처럼 콘크리트로 나름의 멋을 부린 직육면체의 건축물이 어쩌면 특이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대 건축의 기원은 백 년도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 이후 산업혁명으로 돌, 나무, 흙이라는 고전적인 건축 재료에 일대 혁명이 일어난다. 철은 강해졌고, 유리는 단단하고 투명해졌다. 철근콘크리트가 개발되었을 뿐만 아니라 콘크리트 자체에도 적정 강도를 얻을 수 있는 물·시멘트·골재 배합비가 발견됐다. 강도가 확보됨에 따라 기존에 두꺼운 벽으로 지탱하던 건축물에서 무게를 지탱하는 세장한 기둥이 분리됐으며, 이로써 평면의 형태는 자유로워지고 다양해졌다.
1920~30년대 이르러 모더니즘(Modernism)이라는 이름으로 건축 공간과 형태에 대한 여러 아방가르드적 실험이 완성됐고 모더니즘 건축은 단일 육면체, 벽에서 분리된 기둥. 평지붕, 단조로운 외피,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창 등을 자신의 중요한 건축언어로 삼았다. 이후 이 모더니즘 건축은 국제주의 양식이라는 이름으로 전 유럽은 물론 아메리카 대륙과 아시아 전역에도 퍼져나갔다. 한국에서도 1950년대 전후 복구기를 지나 1960년대부터 모더니즘 계열의 건축물이 국제주의 양식의 연장선에서 경제성장과 함께 등장했다. 5.16 군사정변에서 제3공화국 이르는 군사정부 시기와 그 이후에도 얼마간 이어지는 시기 동안 국가 권위를 형태적으로 표현하는 후기 모더니즘 계열의 공공 건축물도 지어졌다.
대전의 대표적인 도심공원인 테미언덕에 세워진 옛 테미도서관 역시 이 같은 흐름 속에 1979년 12월 건축됐다. 시가 주도하는 공공 건축물, 특히 시민의 문화활동을 위한 공공시설이라는 상징이 부지 선정은 물론 건축의 시·지각적 요소들을 과장하고 변주하며, 리듬감과 비례를 추가하여 미적 감각을 배가시키는 방식으로 자신만이 건축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대전시는 이 옛 테미도서관 건물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통해 문학관으로 변신시킬 예정이다. 묻혀진 지역의 우수한 건축유산을 밝은 눈으로 발견해 내고, 그것의 역사를 다시 이어주는 선택을 한 대전시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제 또다시 담대한 건축적 실험과 그 여정을 시작하는 옛 테미도서관에도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그렇게 역사는 이어진다.
/황민혜 대전시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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