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서점이 있는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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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서점이 있는 곳에

민순혜/수필가

  • 승인 2023-07-26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오래전, 영화 '노팅힐(Notting Hill, 1999)'을 관람한 후, 나는 동네 작은 서점을 보면 '노팅 힐'을 상상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윌리엄 태커(휴 그랜트)는 웨스트 런던의 노팅힐에서 친구와 함께 작은 여행 관련 전문 서점을 운영했다. 약간 소심한 편인 윌리엄은 그날도 여느 날처럼 무미건조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 세계적인 인기 영화배우 애너 스콧(줄리아 로버츠)이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다가 그의 서점에서 책을 사갖고 가면서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영화가 무척 로맨틱하고 음악도 좋아선지 잊히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자투리 시간이면 주로 서점에 갔다. 단골은 중앙로 '계룡문고'인데, 전신인 '문경서적' 때부터 다녔다. 잠시 들러도 매대에 진열된 책을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했다.



내게 서점은 절대적인 것 같다. 기쁠 때는 물론이고 울적하거나 뭔가 새로운 것을 찾고 싶어도 서점에 가곤 하니까 말이다. 헛헛할 때는 더욱 그곳을 떠올렸다. 서점에 갈 때는 손가방을 들고 갔다. 그동안 메모해 두었던 책 제목도 적어서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실 나는 남달리 호기심이 좀 많은 편이다. 특히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유명 작가의 책은 신간이 나올 때마다 구입해서다. 표지를 보면서 허기증을 메꾸기도 하는데 이런 내가 정상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서점은 늘 동경의 선상에 있는 건 확실하다.

중고 책도 잘 사는 편이다. 오늘도 시청역 부근 '알라딘중고서점'에 들러서 중고 책 몇 권을 사 들고 나오는데, 괜히 기분이 좋았다. 가격도 저렴하고 중고 책이지만 새 책처럼 상품이어서다. 핸드백에 중고 책 두 권을 넣으니 불룩해져서 좀 무겁기는 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지금 그 책을 뒤적이고 있는 참이다.

친구와 점심 약속도 급한 일이 있다고 미룬 채 책상 위에 앉아서 방금 사 온 책을 펴들고 있다.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 스마트폰이 '뇌'이고 '손'인 사람들, '포노'들이 인류의 문명을 새롭게 쓰고 있다. '문명을 읽는 공학자' 최재봉 교수가 말하는 '포노 사피엔스와 부副의 재편'이다.

남에게 주는 선물도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을 택한다. 핑계 삼아 서점에 가기 위해서이다. 또한 늘 반복되는 생활을 하다 보면 공연히 짜증이 날 때도 예외 없이 서점에 간다. 그럴 때는 대개 국내외 여행 관련 책을 읽거나 사 온다. 여행 관련 책은 신간을 선호한다. 최근의 여행 정보를 얻기 때문이다.

나는 외국은 물론 국내를 여행해도 가는 곳의 정보를 읽고 가는 편이다. 외국에 갈 때는 각기 다른 사람이 쓴 후기를 두세 권 사서 그곳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는 편이다. 무작정 떠난 여행지에서 다음에 또 와야지, 작정해도 사실 다시 또 간다는 것이 쉽지 않아서 아쉬울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단골 '계룡문고'에 들어서면 4면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어선지, 내가 지구의 어느 한 꼭지에 서 있는 양 경이롭다. 세상 속에 진귀한 것들을 구경하는 것처럼 말이다. 서점은 세상과도 같다. 서점 안에 세상이 존재한다니, 믿을 수 없지만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확신할 수 있다.

지구상의 어느 한 곳에서 그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은 생명체 인간으로서 최고의 수혜가 아닐까. 정보의 세상에서 내가 주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함정은 있다. 내가 취하지 못하면 그 어느 것도 가질 수 없다는 것 말이다.

요즘 대전문학관에서는 기획전시인 독립서점 소개전이 진행 중이다. (2023.4.28.~7.30) 삼요소, 머물다가게, 넉점반 그림책방, 책아웃 북스, 구구절절, 독립서점이 참가하고 있다.

특히 전시와 연계해서, 서점 대표가 직접 기획,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6월 24일(토) 삼요소 독립서점 조규식 대표의 'ChatGPT와 소설 쓰기' 강의는 뜻깊고 글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기계치인 내게는 해당 없을 것만 같았는데 실제 해보니 너무나 유익해서다. 그 무엇도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책을 파는 서점에서 책을 쓰는 것도 가르치다니 정말 고마웠다.

7월 7일 넉점반 그림책방 김영미 대표의 '그림책으로 시작하는 인문학' 강의도 인상 깊었다. 그림책은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만 상상했는데 어른들이 읽는 그림책을 보면서 세상은 참으로 다양해진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덥고 끈끈한 한여름, 장맛비를 맞으며 눅눅함을 덜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책뿐이라는 것도 실감했다.

나도 서점을 내고 싶다. 책을 사고파는 곳만이 아닌, 헛헛한 사람들에게 세상 속 구경을 안내하고 싶어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책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길을 내주고 싶다.

민순혜/수필가

민순혜 수필가
민순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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