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
현재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인구 증가로 인한 국가 인프라, 의료, 식량, 고용 분야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극심한 저출산과 인구 감소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미 1983년부터 합계 출산율이 2.1명 이하로 감소하는 저출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2002년 이후로는 1.3명 이하인 초저출산 상태에 이르렀다. 2019년에는 합계출산율이 0.92명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합계출산율 1명 미만 국가가 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020년에는 사망자수가 출생아 수를 넘어서는 데드크로스 현상이 시작됐고, 특히 생산가능인구 비율이 급격히 줄어드는 '인구절벽' 현상도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그 동안 정부는 저출산 대응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고 시행해왔다. 2005년에는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법이 제정됐고, 저출산 고령사회위원회가 구성됐다. 이 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장은 대통령으로서, 이는 상황의 심각성을 여실히 반영한다. 현재까지 다양한 정책이 입안되고 시행됐다. 저출산 대응을 위한 재정 투입 규모는 2006년 2조원에서 2022년 51조원까지 늘어나며 300조원 이상의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2022년 합계출산율 0.78명이라는 통계가 보여주듯 출산율 상승에 실패했다. 저출산 문제는 다양한 사회, 문화, 경제적인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다.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하나하나 분석하고 원인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 새로운 세대가 현재를 만족스럽게 느끼고 미래에 대한 희망에 차 있다면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암담하며 그 결과가 현재의 초저출산 상태다.
이제는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사회문화적 인식의 변화를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개별적인 여건에 따라 심사숙고한 결정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가 됐다. 물론 자녀 양육에서 얻는 보람과 행복보다 양육의 부담이 더 크다고 판단해 출산을 포기한 이들을 설득하고 지원하는 노력은 지속해야 한다. 다만 지원 가능한 사회 자원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그 우선순위를 조금 낮추자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 보다는 낳겠다는 의지를 가진 난임 부부에 대한 지원과 자녀 양육 가정이 실제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는 것으로 방향이 전환되어야 한다.
난임 시술은 결혼 연령의 상승에 따라 증가 추세에 있다. 정부는 2017년부터 난임 시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부담을 줄여주고 있으며, 저소득 가정은 지자체로부터 추가 지원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건강보험 적용은 최대 9회까지이며, 그 이후부터는 자기 부담으로 받아야 한다. 또한 맞벌이 부부의 경우 대다수가 소득 초과로 인해 지자체 추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신생아 12명 중 1명에 해당하는 8.1%가 난임 시술비 지원을 받고 태어났다. 난임 치료에 건강보험 적용 한도를 폐지하고, 소득 기준에 관계없이 난임 부부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출산율 상승에 작지만 확실하게 기여할 것이다. 출산에 성공한 후 영유아 양육 단계에서는 보육과 소아청소년과 진료 문제가 가장 우선해서 풀어야 할 과제다. 보육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한 지원 정책이 수립돼 시행 중이며, 일정 부분 육아 부담을 덜어주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 보완해야할 틈새가 있는 실정이다.
소아청소년과 진료 문제는 심각하다. 전문의 부족으로 야기된 위기 상황이 현재 진행형이다. 여기서 자칫 상황이 악화되면 영유아 진료 체계가 붕괴된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만 더 늦기 전에 적절한 대책이 마련돼 모든 환아가 필요한 진료를 제때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부모가 안심하고 아이를 기를 수 없는 환경에서 출산율 상승을 기대할 수는 없다. 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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