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
먼저 엘리 위젤 교수는 루마니아 태생의 유대계 미국인 작가입니다. 그는 15세 때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 되어 1945년 미군에 의해 수용소가 해방되면서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여동생 3명은 수용소에서 살해되었고, 함께 강제 노역을 하던 아버지는 해방 직전에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은 위젤은 종전 후에는 프랑스의 고아원으로 보내진 후 1948년 소르본 대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시작하였고, 1963년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후 여러 대학에서 인문학 교수로 학생을 가르치는 한편 세계 각지의 폭력과 인종차별 그리고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것이지요.
엘리 위젤이 사망했을 때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엘리 위젤은 우리 시대의 위대한 도덕적 목소리 중 하나였으며, 동시에 여러 면에서 세계의 양심이었습니다. 엘리는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홀로코스트 생존자였을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기념비였습니다"라는 애도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런 찬사를 받은 위젤이 얘기하는 기억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위젤은 강의를 통하여 "망각은 우리를 노예의 길로 이끌지만, 기억은 우리를 구원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기억은 우리의 유일한 보호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기억을 통해 어떤 도덕적 변화나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데 그것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 안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간은 인간적인 대접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였으며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지 우리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사람들만 생각해야 한다고 하는 등 과거의 기억을 통해 현재 인간의 신성한 의무를 부각시켰습니다.
문제는 인간의 도덕성이 한없이 추락한 사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홀로코스트는 물론이고 1970년대 캄보디아 학살, 1992년 유고슬라비아 분열과 인종 청소, 1994년 르완다 대학살 등 수많은 비극적 사건이 있었지만 모두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이에 대한 위젤의 명강의 한 토막을 소개하겠습니다.
"역사는 좁다란 다리이며, 우리가 기억 속에 남는 충격적인 사실들을 계속 기억하는 데에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사실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또 실제로 어느 정도 잊어야 하는 일들도 있지요. 그저 기능적 측면에서 보더라도요. 그런데 만일 우리가 정말로 그냥 잊어버리려 한다면 역사는 결국 되풀이되고 말 것입니다."
맞습니다. 과거의 악행을 잊어버리면 그 악행이 반복되지요. 이렇게 위젤은 기억을 통해서 역사, 도덕 그리고 정의를 얘기합니다. 그런데 기억은 노벨상 수상자 같은 특별한 분들의 전유물은 아니지요. 그리고 기억은 역사와 도덕 등 거창한 담론만도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과거의 사건에 대한 교훈과 낭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의 머리를 가볍게 해드리기 위해 낭만적인 '기억'도 소개합니다. '기억을 걷는 시간'이라는 노래에는 '그리움의 문을 열고/ 너의 기억이 날 찾아와/ 자꾸 눈시울이 붉어져'라는 아름다운 가사가 나옵니다.
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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