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은 대전 호수돈여고 교사 |
오랜만에 마주한 학교가 낯설었다. 방과후학교와 야간 자율학습의 모습이, 웨일북을 통한 줌수업과 학교 입구에 놓여 있는 손소독기가, 그리고 급식실에 칸칸이 새로 설치된 가림막이 모두 그러했다. 교실마다 비치돼 있는 소독수와 체온계, 자가진단앱 또한 내게는 신문물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학생들이 낯설었다. 3년 내내 마스크를 쓴 채 중학교 시절을 보낸 아이들을 맡게 되다보니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거리감을 느꼈다. 세대 차가 벌어질수록 소통의 한계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이들이 내게 보내는 신호를 읽기 어려운 것은 처음이었다. 나 또한 마스크 벽을 굳건히 세우고 있었으니 아이들 역시 내가 보내는 신호들을 알지 못했을 것 같다. 미묘한 표정 변화와 말투, 웃음을 통해 서로 공유할 수 있었던 아이들과의 감정 교류가 명백히 차단된 것 같은 느낌. 마스크가 차단한 라포 형성이랄까.
급식실에서 번호대로 앉아 나란히 마스크를 내리고 점심식사를 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볼 때도 어색했다. '저 아이가 우리반이었나?' 자문을 하며 마스크를 쓰고 있는 평소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한참 그려보고 나서야 우리 반 학생임을 확신하는 것. 이전에는 분명 필요 없던 수고로움이다.
16년차. 일상을 쉼 없이 달려오다가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2023년, 학교에 입사한지 16년차가 됐다. 처음 우리 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종종 선배 선생님들께 "어떻게 20년 넘게 근무하셨어요?"라고 신기해하며 묻곤 했다. 선생님들은 그 질문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셨고, 생각보다 시간이 아주 금방 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이렇게 방과후학교와 야간 자율학습, 학생들과의 줄다리기로 힘듦을 매일 경신하는데, 20년이 금방 간다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선배들의 그 대답이 완벽한 정답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 교직 생활 중 제일 힘들었던 첫해를 뜨겁게 보내고 난 후 몇 년을 거치며 점차 노하우가 생기면서 어느 시점부터는 학교 생활이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졸업한 제자 수가 점차 늘어남과 함께 나의 근속연수도 계속 쌓였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그간 학생들을 오로지 '학생들'로만 대했던 나였다. 잘못한 행동을 꾸짖고 화를 내며 너무나 실망스러워만 했던 것에서 조금씩 벗어나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의 감정을 갖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아이들과의 나이 간극이 커질수록 오히려 학생들을 이해하는 능력은 더욱 좋아지게 되었다. 따뜻한 말을 건네며 위로하고 공감해 주니 부정적인 감정 소모를 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학생들이 '아이들'로 보인다. 소중한 가르침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보듬어 주고 더 이해하며 아이들을 바른길로 잘 이끌 수 있도록 나 또한 성장했다. 가끔 과거에 내가 맡았던 아이들이 생각난다. 잘못한 것을 나무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참고 이해해줬더라면, 손잡아 줬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3년의 내 휴직 기간 학교는 큰 변화를 겪었고, 16년차에 접어든 나 또한 '도제'를 거쳐 어느덧 원숙한 '숙련공'이 됐다. 학교에서 잠시 떠나 있던 3년 간, 나는 처음으로 멀리서 학교와 교사로서의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전염병을 겪으며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과 같이, 내가 학교에서 일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있는 이들을 바른길로 이끄는 안내자가 될 수 있다는 감사함. 마스크를 외면에 얹은 아이들이 내면의 마스크만큼은 훌훌 벗고 행복한 고등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내가 학교라는 공간을 통해 자란 만큼 아이들 또한 나를 통해 바르게 성장하길 바란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성장의 발판을 제공하고, 나는 아이들에게 밝은 빛을 비춰주는 멋진 길잡이, '교육 장인'이 되길 소망한다. /유성은 대전 호수돈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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