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
잘 알다시피, 재난과 재해는 영어로는 disaster로 같은 표현이지만,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재난은 자연재난과 사회재난과 같이 국민의 생명·신체·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사고를 뜻하며, 재해는 재난에 의해 발생한 피해를 가리킨다. 즉 재난은 재해의 원인이라면, 재해는 재난의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의해 설치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안전관리위원회'는 재난예방정책의 수립에, '재난안전상황실'은 재난정보의 파악과 초동조치에, '재난안전대책본부'는 재난대응과 재해복구에 각각 역점을 두고 있다.
재난과 관련한 이 세 기구를 책임지는 공직자는 중앙정부 층위에서는 행정안전부(행안부) 장관이며, 지방정부 층위에서는 행정단위별로 시·도지사와 시·군·구청장이다. '중앙안전관리위원회'는 국무총리가 위원장이지만, 행안부 장관이 간사로서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또한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은 행안부 장관이 설치·운영하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행안부 장관이 본부장을 맡고 있다. 현재 행안부 장관이 국회 탄핵 소추로 직무가 정지되어 있어, 차관이 장관 직무대행으로 세 기구의 업무를 형식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차관급인 행안부의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형국은 기우이겠지만, 재난대책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물론 재난의 예방과 복구 업무는 오랫동안 축적된 노하우와 과학적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 보다는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 책임자의 무신경과 행정 현장에서의 안이함이 대형 참사를 초래한 일이 한 두번이 아니다. 현재 직무가 정지된 행안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159명의 희생을 초래한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한 국회의 해임건의안이 대통령에 의해 반려하는 바람에, 올 2월 국회에서 탄핵 소추를 당해 헌법재판소(헌재)에서 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 내지 정부의 기본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와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 이 렇기 때문에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국방부 장관과 국내 재난업무를 총괄하는 행안부 장관의 공석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오송 참사는 교통재난이 아니라 수해재난이다. 차량들이 물에 잠겨 참사가 일어났다고 해서 국토교통부 장관이 자신의 소관 업무라고 판단해 현장을 방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무총리나 행안부 장관 직무대행이 현장을 먼저 방문하는 것이 사태수습 차원에서 타당하다고 본다. 행안부 장관의 장기 공석은 장관의 개인적 위신이나 현행 의회주의에 대한 대통령의 소신을 넘어서는 문제로, 헌법정신에 비춰볼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이 헌재의 심판 절차와 관계없이 새로운 장관을 임명할 수 있다고 하는데, 대통령의 용단을 기대하는 것은 과연 연목구어(緣木求魚)일까?
재난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천재도 있고, 사람의 잘못이나 실수로 발생하는 인재도 있다. 이 같은 재난을 예방하고 대처하는 데에는 왕도나 첩경은 없다. 더군다나 미봉책이나 요행수에 맡겨 둘 수가 없다. 모든 행위자들이 유비무환의 자세와 "돌다리도 두둘겨 보고 건너라"라는 안전의식을 지녀야 한다. 특히 행정 책임자에게는 재난 문제에 관해서만,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라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대통령이 "재난 상황에서는 다소 과하리만큼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지시는 백번 맞는 말이다. 앞으로는 이 같은 말이 만시지탄이 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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