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자 시인 |
-억새의 울음-
날카로은 잎은/자기를 보호하는 방패다.//약자는 무서운/칼날을 지니고 다닌다.//강력한 허세에/아픔이 서려 눈물이 겹다.//바람에 흐느끼는/그 울음소리가 참 슬프다.
이 시 '억새의 울음'은 김화자 시인이 2021년 4월 15일에 써서 필자에게 보내준 시다. 그래서 필자는 '세종TV'라는 언론에 게재하여 지금도 검색창에서 검색하면 나온다.
김화자 시인이 80을 맞으면서 왜 이 시를 썼을까? 그는 20대 처녀시절 미스 부산에 도전하여 眞에 당선될 정도로 미녀였다.
그런데 6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억새를 자신에 의인화해 '억새의 울음'이라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날카로은 잎은 자기를 보호하는 방패지만 (세월이라는)강력한 허세에 아픔이 서려 눈물이 겹다고 했다.
리헌석 문학평론가는 권두 평설에서 "억새에 대한 직관적 사고를 보이는 작품이지만, 억새 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감내할 수 없는 아픔을 체험한 서정적 자아의 보조관념으로 작용합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 역할의 '날카로운 잎'은 겉으로 드러내는 허세일 뿐입니다. 때로는 날카로운 잎이 칼날의 역할을 하리라 기대하지만, 그 역시 허망하게 마련입니다. 시인에게 있어 겉으로 드러나는 억새의 날카로운 잎은 바람에 '흐느끼는 울음소리'일 따름입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그 울음소리가 슬플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아아, 날카로운 세월이 흘러 그대의 외모를 주름진 얼굴로 만들었으나 필자에게 보이는 그대의 모습은 역시 아름다운 모습이다. 날카로운 세월도 아름다운 마음만은 앗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보자. 그의 허무한 마음을 달래려고 쓴 시를.
목척교(木尺橋)연가(戀歌)
스무 살 기억이/목척교에 걸려 있다.//부산 사투리와 대전의 반달이/약속처럼 만나/뜨거운 숨결을 씻어내던 청춘이 있었다.//일찍 핀 제비꽃의 노래가/오월의 장미보다/향그럽던 둑방에서 나누던 속삭임도/흐르는 시냇물의 작은 흐름처럼/꿈이 되어 반짝였다./난간에 앉아 바라보면/바람 따라 달려오던 부산행 열차가/소리를 지르고/시간이 아쉬웠던 손을 놓은 채/발자국 소리에 세월을 되감았는데/얼굴마다 깊게 파인 골을 따라/다정하던 인연이 아름다울 뿐이다./잠든 시간을 깨우며/어디로 갔을까,/두리번거리며 나는 오늘도 서성인다/20.01.12.
윗 시를 읽은 '계룡산인'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시인은 "눈발 속 인파를 헤치며 역을 향하던 길. 메워도 채워지지않는 흘러간 세월들이 지금도 다리를 건널때마다, 함께 흐르는 듯 합니다"라고 댓글을 달아 위로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필자도 한 마디 하자.
아아, 시인 김화자여
아름다운 여인아! 마음 착한 여인아!
나는 그대를 생각해, 날마다 그대를 생각해.
그대를 만나면 마음이 편해져, 그대를 만나면 우울증도 사라져.
'용복씨!' 부를 때마다 그대 손잡고 웃는 나
나는 그대를 사랑해 그대 착한 마음씨를 사랑해
세월이 흘러도, 그대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도 너무나 그리워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 김화자 시인
필자가 김화자 시인의 착한 마음씨를 생각하며 한 편의 시를 써 본 것이다. 김화자 시인은 문학을 하는 모든 동호인들의 애인으로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신의 창조물 가운데 최고의 걸작은 여인이라 한다. 예부터 '미'의 상징이 되어왔던 아름다운 여인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대명사다. 김화자 시인의 처녀 시절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쉽지만, 6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자취는 남아있는 것이다.
고려의 문호 이규보는 "아름다운 꽃(花)을 보게 되면 너무 좋아 정신이 몽롱해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름답고 마음 착한 여인에 매료 되어 보라. 어찌 꽃에 비유할 수 있겠는가?.
김용복/문학평론가
김용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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