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작가정신, 정선의 그림 '백천교(百川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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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작가정신, 정선의 그림 '백천교(百川橋)'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3-07-1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우리는 예술 창작 활동이나 표현에 종사하는 사람을 예술가라 부른다. 원래 예술 모두가 표현이지만, 여기서 표현이란 가수, 연주자, 배우와 같이 다른 사람의 작품을 재창출 하는 것이다. 물론 표현이라 해서 창작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면세계, 기법, 숙련 등 독창성이 없으면 좋은 표현이 될 수 없다. 다만 1차 창작자가 아니란 의미다. 1차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은 따로 작가라 부르기도 한다. 극작가, 방송작가 등과 같이 분야명칭을 앞에 붙인다. 물론, 시인, 소설가, 서예가, 화가와 같이 오랫동안 통용되어오던 명칭에는 굳이 작가라 붙이지 않는다.

창작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로 창조라 불리기도 하는데, 서로 구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창작은 작품을 독창적으로 만드는 것이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엄격한 의미의 창조는 신의 영역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술이 추구하는 것은 아름다움이다. 말은 간단하지만 심오한 심층구조를 가지고 있다. 영혼의 노래요 지성의 꽃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호기심의 발로일 수도 있으나, 가슴, 두뇌, 신체의 모든 아름다움이 동원된다. 감성과 지성, 오성의 형상화이기 때문에 항상 문제의식이 내포된다. 격물, 성찰, 화두, 지향점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혼자 하는 것은 예술이라 하지 않는다. 남에게 보여 주었을 때, 서로 어우러졌을 때 예술이 된다.

주목할 점은 창작, 창의적 활동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것 또는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전에 없던 것을 만드는 것이다. 첫 번째 작가정신이라 할 것이다. 흉내 내는 것을 창작이라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곧잘 잊는다.



전시회가 많이 열리고 있다. 감상하다보면 작가정신이 결여되어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백천교
정선 作, 백천교(百川橋), 1711. 비단에 담채. 36 × 37.4㎝ 국립중앙박물관
화가 정선(鄭敾, 1676~1759)이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우리 회화는 창작품이라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중국 화첩이나 서적을 놓고, 보고 그리는 임화(臨畵), 관념화가 대부분이었다. 따라 그리다 보니, 풍경도, 인물도 화첩 그대로였다. 거기에서 탈피한, 창작의 길로 접어든 차이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그림 하나 감상하자. 정선의 <백천교(百川橋, 1711. 비단에 담채. 36 × 37.4㎝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은 <백천교>와 함께 <단발령망금강산(斷髮嶺望金剛山)>, <피금정(被衾亭)>, <금강내산총도(金剛內山總圖)>, <장안사(長安寺)>, <보덕굴(普德窟)>, <불정대(佛頂臺)>, <옹천(甕遷)>, <고성(高城) 문암관일출(門巖觀日出)>, <해산정(海山亭)>, <총석정(叢石亭)>, <사선정(四仙亭)이 위친 삼일호(三日湖)>, <시중대(侍中臺)> 13점의 그림, 신영이 1807년에 쓴 발문 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첩은 정선이 36세 때인 1711(숙종 37)년 금강산 여행 뒤에 남긴 화첩이다. 그의 실경산수화 중 연대가 밝혀진 가장 이른 그림이다. 백석공(白石公)이란 인물과 함께 유람하였다. 금강산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법한 명산으로 강원도의 북측, 금강군, 고성군, 통천군과 남측의 고성군 거진읍, 현내면, 수동면에 있는 걸쳐 있는 산이다. 봄에는 금강산(金剛山)이라 하지만, 여름 봉래산(蓬萊山), 가을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이라 부른다. 눈이 내렸을 땐 설봉산(雪峰山), 묏부리가 서릿발 같다고 상악산(霜嶽山), 신선이 산다 하여 선산(仙山)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풍악은 금강산의 가을이름 인 것이다. 1998년 말부터 2008년까지 일부 구역을 관광할 수 있었으나 필자는 가보지 못했다.

누구나 처음 만나는 것은 경이롭다. 정선 역시 금강산이 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어떻게 그림으로 풀어낼까 노심초사했음이 분명하다. 때문에 기념비적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백천교는 유점사 아래 있는 다리다. 심산유곡에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왼편엔 고깔 쓴 가마꾼이 늘어 서있고, 계곡 옆 기암절벽에는 갓을 쓴 선비들이, 오른 쪽에는 말과 말구종이 서성이고 있다. 일종의 환승구역이었던 모양이다. 유람객이 백천교 까지는 말로 이동하고 그 안에서는 가마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고깔 쓴 사람은 유점사 승려로 추정된다. 가마꾼과 안내자 역할 했다고 한다. 국교가 불교였던 조선의 억불숭유정책으로 고려시대와 달리 승려가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았던 것이다.

비로소 등장인물이 조선 사람이다. 조정육이 쓴 <붓으로 조선 산천을 품은 정선>에 의하면, 절친 이병연도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을 보고 놀랐다 한다. 의관과 행색이 그간 그림에서 보지 못하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 바뀐 것이 뭐 그리 대단한가?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니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것도 알고 보면 별것 아니지 않은가? 실은 엄청난 변화였던 것이다. 그의 발걸음이 조선 화단을 새롭게 하지 않았는가?

사소한 다름도 종내는 엄청난 차이가 된다. 다름에서 오는 쾌감도 작가정신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창작에 임하면 항상 먼저 상기해볼 일이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시인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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