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크로키에서 배우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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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크로키에서 배우는 지혜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 승인 2023-07-11 17:11
  • 신문게재 2023-07-12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장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장
더위가 기승을 부리니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나고 습도까지 높아서 여름 나기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자꾸 시원한 냉면이 생각나는 것은 물론 더위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더위를 식혀 주는 시원한 음식인 냉면을 여름철 보양식이라고 하지는 않는 것같다. 더우니까 시원한 냉면 한 그릇 먹자는 말들은 흔하게 하지만 더위를 이기는 보양식으로 냉면을 권하는 경우는 별로 들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여름철 보양식은 대부분 뜨거운 음식이 많다. 대표적인 음식은 아마도 삼계탕일 것이다. 뜨거운 국물 음식을 먹으면서 맛이 좋으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시원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서 시원하다고 하는 말이 냉면을 먹으면서 시원하다고 하는 의미와 다른 것이라는 것은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더운 여름에 갈증이 날 때 시원한 냉수를 마시는 것보다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이 갈증 해소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한다. 요즘에는 어디를 가도 시원한 에어컨이 있어서 더위에 노출되는 빈도가 많이 줄어 들어 지내기 편하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냉방을 하면 더위를 이기기보다 냉방병에 걸리기도 한다.

더위를 이기는 근본적인 방법은 오히려 몸을 따뜻하게 하고 따뜻한 물이나 음식을 먹는 것이라는 것을 선조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것같다.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생겨난 배경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일이라는 것이 직설적이기 보다는 은유적인 처방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경우가 많다. 빛을 표현하려면 빛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배경을 어둡게 하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고, 색이 선명하게 보이게 하려면 자꾸 덧칠하는 것보다는 보색을 대비시키는 것이 효과적인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화실에서 누드 크로키 작업을 해 온지 20년이 넘은 것같다. 크로키는 종이 위에 목탄이나 연필로 모델의 순간적인 동작을 포착해서 짧은 시간 내에 그리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크로키에서는 세부적인 묘사나 정밀한 재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빠르게 흐르는 선으로 움직임을 순간적으로 포착해서 표현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재료도 보통은 콘테나 연필을 사용하지만 붓으로 그리기도 하고, 파스텔이나 펜을 사용하기도 한다. 재료와 표현의 방법은 제한이 있지 않으므로 여러 가지 다양한 표현방법이나 재료를 실험해 보기도 한다. 화가가 지속적으로 다양한 대상을 여러 가지 표현 방법과 재료를 사용하면서 실험해 보는 것은 마치 과학자가 다양한 탐구대상을 살펴보고 관찰하고, 새로운 발견을 위하여 실험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누드 크로키 작업은 언제나 기대와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성취감이 있어서 오랜 기간 동안 꾸준하게 해 오고 있는 것같다.

그림의 소재로서 사람을 그리는 일은 새로울 것이 없는 일이지만 누드 크로키는 대상을 그리는 방식에 있어서 매우 특별한 감각을 갖게 하고 표현 방법에 대한 예민함을 기르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몸의 움직임 중에서 순간적으로 자세를 포착해서 스케치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느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역동적인 움직임의 순간을 포착해서 그리는 일은 정물화를 그리거나 인물화를 그리는 일과는 매우 다른 감각을 필요로 하고 그림에서 느끼는 의미도 다른 것같다. 스케치란 어느 한 순간의 모습을 한 장의 그림으로 그리게 되는 것이니 결과적으로는 어느 한 장면의 고정되어 있는 상태의 그림으로 표현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어느 한 장면의 고정된 모습을 그리는 크로키의 생명력이란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한 운동감이나 역동성을 보여주는 데 있다는 점에서 매번 그릴 때 마다 그림의 역설을 느끼곤 한다.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해서 한 장의 그림으로 그려 내야 하는데 화면에 고정된 그림은 정지된 느낌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운동감이나 속도감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일종의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곤 하는 것이다. 모델의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려면 움직임을 모두 따라가면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전후의 움직임이 한 순간의 동작에 내면화되어야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순간을 포착한 고정된 모습을 통해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한다는 것은 분명 역설이지만 그러한 역설이 팍팍한 세상을 보다 여유있게 만들어 주는 묘약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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