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식 이사장 |
행복은 우리 모두의 바람이자 목표일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는 다들 원하지만,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막연한 행복을 향하여 일제히 달려가는 혼돈의 경주에서 뒤처질까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행복에 대한 정의는 고대로부터 철학자들의 단골 주제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도 그중의 하나인데, 그는 행복을 최상의 좋음과 잘 됨의 인식과 실천에 연관된 것으로 정의한 후 좋음과 잘됨의 최고단계로 이루어지는 행복은 완전성 및 자족성까지 포괄한다고 규정했습니다. 행복은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최고의 좋음이나 최고단계의 잘 됨을 말하며, 행복한 사람은 잘 됨과 좋음을 최고단계로 인지하며 누리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다수의 선택에 행복의 형식적 당위성을 부여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정량적 행복론이나, 개인의 존엄과 자율을 강요하거나 훼손하는 행복은 있을 수 없다는 반대편 시각도 동시에 존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행복은 정성적 가치임으로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다는 일부의 시각에 동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현대사회는 과학이 주도하는 사회로 명명될 정도로 과학기술의 발전은 자연계와 인간계를 포함하는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혁명적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짐짓 보류한 미지의 영역과 신비의 세계에도 예외가 없습니다. 어찌 보면 인간 자신에게로 향하는 과학기술의 날카로운 분석과 연구는 오히려 더욱 가혹할 뿐입니다. 인간의 존엄과 고유성을 보장하고 담보해야 할 부문도 가차 없이 까발려지고 있으며 인간의 신체적, 생리적, 심리적, 정신적 분야까지도 샅샅이 파헤치는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 중 인간의 행복을 지배하는 호르몬의 존재가 밝혀지고 있으며, 행복은 호르몬 주사 한 방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과학적 진실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 행복한 세계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는 행복할 일만 남았을까요?
최근의 한 연구는 호르몬의 역설을 검증하여 반전에 이르게 합니다. 사랑에 빠지게 하는 호르몬 옥시토신(Oxytocin)에 반응하지 못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해도 여전히 짝을 사랑하며 배신하지 않고 새끼도 잘 키운다는 동물실험결과를 국제 학술지 뉴런(Neuron)에 발표하였습니다. 이 연구의 주도자는 오랜 시간 이어지는 사회적 유대를 형성하는 과정은 단 하나의 분자가 맡기에는 너무나 중요하다고 전합니다.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Dopamine) 이나 엔돌핀(Endorphin)의 역할도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행복은 단순한 약물투여나 일시적 자극으로 성취하기에는 복잡하고 미묘하며 난해한 개념입니다.
어찌 보면 행복은 인류의 최대 숙원이자 최고의 난제이기에 아직은 해결하지 못하는 인류의 몇 안 되는 숙제로 남겨두는 것도 행복한 인류를 위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행복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 해답을 찾기 위해 행복을 주제로 함께 고민해보는 과정조차 우리 모두의 행복역량을 높일 수 있는 행복한 좋은 기회이며 잘 됨을 향한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과 기대는 하나가 채워지면 더 강한 자극이나 다른 목표를 향하여 전환하는 유전적 특성을 보유하고 있는 점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고정불변의 개념이 아니라 시대적이며 공간적 맥락과 함께 상황적 요인까지도 충족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인위적 호르몬 공급으로 행복을 얻겠다는 발상 자체가 우습기도 하고 가소로워지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모두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신천식 공공리더십연구원 이사장·행정학·도시공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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