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지역본부 정형식 팀장 |
프랑스 대표적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를 소비의 사회라 했다. 계급이 사라지고,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가 주어진 오늘날의 사회에서 '소비'는 새로운 계급을 만든다. 어떠한 것을 소비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상대적인 위상이 보여지는 것이다. 브랜드는 소비 사회에서 소비자를 나타내는 하나의 기호이다. 그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 형상, 스토리를 소비하면서 자신의 위상과 이미지를 표현하려 한다.
4차 산업혁명, AI 시대에 더욱 빨라진 기술과 정보 불균형 해소는 국가 간의 소비 격차를 줄이고 있다. 한국은 그간 한 수 위의 기술경쟁력을 기반으로 중국과 동남아 시장을 공략해 왔지만 이미 중국은 기술과 혁신적 서비스가 우리를 넘어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동남아 시장도 마찬가지다. 더욱 빨라진 정보격차 해소는 맹목적 한류 사랑이 아닌 철저한 검증 혹은 글로벌 브랜드 선호현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기술력의 격차가 좁혀지는 시대 경쟁력은 제품과 서비스가 가지는 브랜드 힘에 있다고 본다. 당장 기업운영과 생산에도 힘이 벅찬 수출 기업인들에 막대한 마케팅 비용과 인력이 소요되는 브랜드 전략을 구축하라는 말은 아니다. 모두가 애플, 삼성과 같은 브랜드 홍보와 마케팅을 할 수는 없다. 기업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CEO의 제품에 대한 생각, 즉 철학이 스며든다면 강력한 스토리를 가진 히든챔피언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다.
인천에 소재한 동아알루미늄이 만든 브랜드 '헬리녹스'가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캠핑용품 업계 BTS로 통한다는 이 회사는 세계 최고 알루미늄 텐트 폴대를 만들어온 모기업 동아알루미늄 기술력을 바탕으로 초경량 고강도 알루미늄 캠핑의자를 만들었다. 초경량 고강도 알루미늄이라는 원천기술에 최상급 부품과 감각적인 디자인을 결합하자 캠퍼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의자가 됐고, 일본 명품 아웃도어 브랜드 몽벨의 부회장이 헬리녹스를 수입하기 위해 본사를 두 차례나 찾아왔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기술의 진정성을 발휘하는 동시에 기존 제품 고유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고 전문성을 강화하면 한 분야에서 깊이 뿌리를 내리는 브랜드를 창출할 수 있다. 경쟁 영역을 최대한 좁히면 경쟁력은 깊어지는 것이다. 소비자의 니즈에 맞춰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큰 브랜드의 일이다. 작은 브랜드에 그러한 전략은 향후 최저가격 전략으로 변질되며, 강점을 가졌던 브랜드마저 전문성을 잃어가게 만들 것이다.
우리 수출 기업을 살펴보면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최초,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해 한 번씩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가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품 기술개발에 너무 몰두한 탓인지 기술력만 보이고 그 기술이 가진 브랜드가 인상 깊게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품개발을 위해 각고의 노력과 고뇌들을 브랜드 스토리로 도출해 낸다면, 해당 영역에서 소비자, 바이어의 뇌리에 깊이 새겨질 것이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최근 출시된 생성형 AI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막연한 접근을 구체적 접근으로 바꿀 수 있다. 브랜드 전략부터 스토리까지 'Chat GPT'를 활용하면 그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MS의 Bing 크레디에디터, Open Ai의 DALLE, 미즈저니 등을 활용하면 구체화 된 브랜드 스토리를 이미지로 만들 수 있다. 따로 누군가 고용할 필요도 없고 컨설팅, 디자인 업체를 부를 필요도 없다. 제품에 대한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기업의 철학적 사고만 있어도 충분하다. 변화하는 시대에 진화한 기술을 활용해 우리 수출기업에 히든 챔피언 브랜드가 지속 탄생하길 기대해본다.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지역본부 정형식 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