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애 무용가'…23년 국립무용단에서 활동한 그는 자신의 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우리나라 최고의 무용단을 뛰쳐 나왔다. |
'박영애 무용가'…그는 "우리의 전통춤은 성격과 성품, 행동, 습관 등 오랜 시간동안 삶 속에서 축적돼 나온 최고의 예술의 세계"라고 말했다. |
▶무용의 시작은?
"중학교 1학년때 무용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한 달 간 무용학원을 다닌 것이 무용과의 첫 인연이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간곳은 서양 무용학원인데, 처음에 발레로 시작했다. 그리고 고3 2학기 때, 한국무용으로 전공을 바꿔 김도희 선생님께 한국무용을 배웠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 발레단은 3개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한국무용단은 17개정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무용을 전공한다면 어디든 입단할 수 있겠다 싶어서 한국무용을 선택한 것 같다. 운명이라기보다 눈치가 빨랐던 것 같다(웃음)"
▶지역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해 국내 최고의 무용단에 입단했다.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전공을 했다. 교사자격증을 따서 교직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다가 무용단 시험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서울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시험을 봤는데, 한 번에 합격했다. 지금 생각하면 기적같은 일이다. 지역 대학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무용단에 합격한 것이다. 운 좋게 한번에 최종적으로 통과했는데, 그때가 대학졸업 전인 1998년 12월 말이다."
▶얼마나 국립생활을 하셨나.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단원으로 정확히 23년이다. 2021년 12월31일까지였다."
▶최고의 직장인데, 왜 그만뒀나. 결정적 이유는?
"2009년에 고(故) 이매방 선생님(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살풀이춤 보유자)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전통춤은 창작무용처럼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성격과 성품, 행동, 습관 등 오랜 시간동안 삶 속에서 축적돼 나온다. 국립무용단의 춤은 2013년부터 국립극장 시즌제의 도입으로 점차 외국무용, 현대무용이 국립무용단 레퍼토리로 공연되기 시작했고, 국립무용단의 춤은 신무용과 전통춤의 재창조라는 단체의 설립기조를 잃고 점점 현대무용으로 변화돼 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주말에는 전통춤을 추고, 평일에는 무용단 생활을 하다 보니, 전통춤 기량에 발전이 더딘 게 느껴졌다. 나의 춤에 대한 고민은 전통춤을 잘 추고자 함에 있었고 전통춤에 대한 깊은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춤(살풀이춤, 승무)을 올 곧게 전승하기 위해 과감하게 퇴사를 결정하게 됐다"
▶퇴사 이후, 현재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나.
"현재는 박영애 무애(無碍) 무용단을 운영하면서 전통 춤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또 (사)이매방 춤보존회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승무와 살풀이춤을 중심으로 이매방 선생님의 춤을 전승하고 있다. 그리고 경력단절 무용전공자들을 모집해서 다시 춤을 출 수 있도록 재교육을 돕고 있다. 재교육은 재능기부로 이뤄진다"
'박영애 무용가'…그는 "우리의 전통춤은 자신을 위로하고 달래주는 '치유'"라고 말했다. |
"저를 가장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기술이자, 자신을 위로하고 달래는 치유의 힘이고 제가 살아온 시간의 궤적 자체인 것 같다"
▶전통무용은 판소리와 관현악기 등보다 더 생소한 느낌이다.
"전통춤 대부분은 홀춤(혼자 추는 춤)이라고 생각한다. 오롯이 자신과의 싸움이다. 싸움은 평생동안 이어진다. 그래서 대중들이 나만의 춤을 몰라줘도 아쉽지가 않다. 나만의 춤을 추는 행위에 매우 만족하는 것 같다. 그래서 춤의 대중화가 더딘 것 아닐까 생각한다. 춤은 올바른 마음에서 시작된다. 바른 마음으로 오랜 시간(최소 10년 이상) 전통춤을 춰야만 춤 자체가 곱다. 결국 춤추는 것 자체가 다른 것을 잊게 한다. 다른 생각을 하면 춤에도 변형이 생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모든 전통무용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춤의 대중화를 위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춤을 교육하면 춤 자체가 단순해지고, 춤의 기교가 사라진다. 물론,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또 직업무용단의 역할도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나라 직업무용단의 무용수들은 각 대학에서 키워진 우수한 인재들이 입단하고, 각각의 기량은 매우 뛰어난 데 비해 안무가 지나지게 획일적이어서 무용수 개개인의 만족도와 춤 기량을 펼쳐보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 무용수이기 이전에 개인의 역량과 개성을 존중하면서 작품을 안무하고 지도한다면 무용수들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지도자에 대한 호감은 물론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신뢰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는 곧 직업무용단의 공익활동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뛰어난 기량과 수준 높은 작품으로 무대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춤출 수 있는 공연환경을 만든다면 시민들에게 춤과 공연작품이 각인되고, 감동을 선사함으로서 '다시보고 싶은 우리춤'으로 공연장을 찾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직업무용단의 공연 활동이 시민의 문화 향유와 전통춤 대중화를 위해 중요하고, 그 구성원(무용수)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춤출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전통무용의 대중화와 세계화는 언제쯤이라고 보나.
"다른 사람의 춤을 인정하고 함께한다면 대중화와 세계화는 올 것이다. 정말, 전통 춤을 추구하는 춤꾼들과 전통무용의 복합 예술적 재미와 다양성을 이끌어 내는 사람들(직업무용단, 콘텐츠 개발자)이 철저하게 분업화가 돼 함께 전문성을 발휘한다면 대중화와 세계화는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전통춤 교육이 국악교육과 함께 학교교육 시스템으로 들어간다면 대중화와 세계화는 더 앞당겨 질 것이다."
▶무용만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무용의 경쟁력은 '치유'라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스트레칭과 등산, 걷기, 달리기 등의 움직임으로도 기분이 한결 좋아질 수도 있지만 무용은 나와 내 정신이 솔직하게 마주하는 시간이다. 몸과 마음(정신)의 일체를 실현하고 더 나아가 호흡이 원활해진다면 카타르시스를 느껴 더 없는 신체적, 정신적 만족을 체험하게 된다. 또 정서적 만족 이외에 신체로 표현되는 아름다움은 그 어떠한 미적인 부분을 흉내 낼 수 없을 것이다. 미래세대 AI와 로봇이 생활, 산업구조를 변화 시킬 때, 인간의 몸과 감성으로 추어지는 무용은 결코 로봇과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분야일 것이다."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나.
"무용예술계에서 앞으로 10여년 치열하게 열심히 살고 60세 이후에는 작은 소망이지만 자연을 벗 삼은 연습실에서 동료들과 후배,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춤을 통해 인생을 가꾸는 삶을 살고 싶다"
▶후배(전통무용)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최근 전통무용을 전공하는 후배들과 젊은 세대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무용 전공자라면 전공과 상관없이 반드시 우리의 전통춤을 최소 3년이상 추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의 전통춤은 구전심수(口傳心授·말로 전하고 마음으로 가르친다)로 전해지는 전통예술 영역이다. 그래서 마음이 좋은 스승, 춤 잘 추는 스승, 개인의 환경에 따라 춤의 기교나 색깔이 크게 차이가 난다."
▶끝으로 한마디?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전통춤을 감상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길 기대한다.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잘 추는 한국무용이 '우리의 전통춤 이구나'가 아니라 무용가들이 녹여내는 삶(춤)에 대한 진실성, 진정성을 감상할 수 있는 관객들이 많았으면 한다."
손도언 기자 k-55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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