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에 빠지지 않는 음식은 송편, 그에는 팥이나 콩 등의 소가 채워지는데, 학문 역시 꽉 차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한다.
학교 다닐 때 더러 해 보았다. 책 한권 다 배운 것과 관계없이 한 학기가 끝났다고 사제지간 함께 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내용이나 절차는 다를지언정 책거리가 있었다. 스승의 노고에 감사하고 성장의 기쁨을 나누며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시간이다.
서당뿐 아니라 궁궐에서도 책거리가 있었다. 작자 미상의 <중묘조서연관사연도(中廟朝書筵官賜宴圖, 1535, 화첩, 종이에 채색, 42.7 × 57.5cm, 홍익대학교 박물관)>를 보자. 서연관은 왕세자 교육담당 관리의 총칭이다. 정1품관에서 정7품까지 강의 전담자를 비롯하여 수십 명이 관여한다. 사연이란 나라에서 잔치를 베푼다는 뜻이다.
윤진영의 <조선 시대의 삶, 풍속화로 만나다>에 의하면, 1535년(중종 30) 왕세자가 <춘추(春秋)>를 마치자, 39명의 서연관을 비롯한 관리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주찬과 시녀, 기녀, 악사 등이 동원되었다. 송혜진 저 <중종조 사연(賜宴) 양상을 통해본 주악도상 분석>에 의하면 1534년(중종29)이란 주장이어서 서로 엇갈린다.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았다. 중종실록 78권, 중종 29년 10월 5일 무술 1번째 기사에 "오는 6일 서연관을 공궤할 때 일등악(一等樂)을 하사하라"가 있고, 중종실록 78권, 중종 29년 10월 6일 기해 1번째 기사에 "오늘 서연관에게 잔치를 베푼 뒤에 당상관에겐 반숙마(半熟馬) 1필씩, 당하관에겐 아마(兒馬) 1필씩 내리라."가 있다. 기로연(耆老宴)·영친연(榮親宴) 등에 임금이 정재(呈才, 가무)·여기(女妓)·악공(樂工) 등을 보내는 것을 사악(賜樂)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4등급이 있다. 그 중 일등악은 악사(樂師) 1인, 여기 20인, 악공 10인이 배치되는 것이다. 인원수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림은 이 두 기사와 부합된다. 참고로 악사는 지휘 또는 감독자이다.
근정전은 경복궁의 주 전각이다. 신하에게 조하(朝賀) 받거나 정령(政令)을 반포하는 정전(正殿)이다. 때로는 사신을 맞아들이기도 하고 양로연(養老宴)이나 위로연 같은 잔치를 베풀기도 하던 곳이다. 주지하다시피, 1395년에 창건된 전각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 그림은 소실되기 전의 모습이 되겠다. 당시의 모습이 그려진 유일무이한 그림이다. 돌 기단 위에 중층 구조이다. 치두와 잡상 모습까지 자세히 그렸다. 그러면서도 주제인 잔치 내용 때문에 한편으로 밀려나 작게 묘사되어 있다. 어도 역시 밀려난 정전을 근정문에 잇다보니 사선이 되었다. 앞쪽이 근정문일 터이고 동서에 일화문과 월화문이 보인다. 뒤편 다른 건물은 생략하고 숲과 백악산이 곧 바로 그려져 있다.
작자 미상의 <중묘조서연관사연도(中廟朝書筵官賜宴圖>, 1535, 화첩, 종이에 채색, 42.7 × 57.5cm, 홍익대학교 박물관 |
참석자 명단이 첨부되어 있어 39명임을 알 수 있으나 화폭에 모두 담지는 않았다. 악공 역시 일등악보다 수가 적어 곡연(曲宴, 아주작은 연회)으로 보기도 하나 숫자는 의미가 없다고 본다.
맹자 진심장에 군자삼락(君子三樂)이 나온다.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고 형제들이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땅을 굽어보아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들을 얻어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첫 번째는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는 스스로 닦을 일이다. 아무래도 셋 중 으뜸은 가르치는 것 아닐까? 가르침에는 배움도 포함된다. 긍지가 되고 자부심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사연 장면을 그리게 하여 나누어 가졌다. 오래오래 기리기 위해 여러 점의 모사본도 제작되었다.
여중생들이 가을축제 준비한다며 연습장을 빌린다고 찾아왔다. 잊었던 것을 되찾았다는 들뜨고 활기찬 분위기다. 문득, 코로나19로 빚어진 변화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에 놀란다. 잊었던 것, 사라진 것이 너무 많지 않을까? 유익하고 바람직한 전통은 너나없이 잘 챙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거리도 그 중 하나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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