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소중한 것은 되살려야, 책거리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소중한 것은 되살려야, 책거리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3-07-07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서당에서 학동이 책 한권 다 배우면 감사표시로 간단한 음식과 술 등으로 훈장과 벗에게 대접하는 행사가 있다. 예전에는 인쇄물이 원활하지 않아 빌려서 필사하기도 했는데, 필사가 끝난 다음 빌린 사람이 빌려준 사람에게 감사의 자리로 만들기도 했다 한다. 정리하자면, 책거리란 학생이 책 한 권을 다 읽거나 베껴 쓰는 일이 끝났을 때 선생과 친구들에게 한턱내는 일이다.

책거리에 빠지지 않는 음식은 송편, 그에는 팥이나 콩 등의 소가 채워지는데, 학문 역시 꽉 차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한다.

학교 다닐 때 더러 해 보았다. 책 한권 다 배운 것과 관계없이 한 학기가 끝났다고 사제지간 함께 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내용이나 절차는 다를지언정 책거리가 있었다. 스승의 노고에 감사하고 성장의 기쁨을 나누며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시간이다.

서당뿐 아니라 궁궐에서도 책거리가 있었다. 작자 미상의 <중묘조서연관사연도(中廟朝書筵官賜宴圖, 1535, 화첩, 종이에 채색, 42.7 × 57.5cm, 홍익대학교 박물관)>를 보자. 서연관은 왕세자 교육담당 관리의 총칭이다. 정1품관에서 정7품까지 강의 전담자를 비롯하여 수십 명이 관여한다. 사연이란 나라에서 잔치를 베푼다는 뜻이다.



윤진영의 <조선 시대의 삶, 풍속화로 만나다>에 의하면, 1535년(중종 30) 왕세자가 <춘추(春秋)>를 마치자, 39명의 서연관을 비롯한 관리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주찬과 시녀, 기녀, 악사 등이 동원되었다. 송혜진 저 <중종조 사연(賜宴) 양상을 통해본 주악도상 분석>에 의하면 1534년(중종29)이란 주장이어서 서로 엇갈린다.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았다. 중종실록 78권, 중종 29년 10월 5일 무술 1번째 기사에 "오는 6일 서연관을 공궤할 때 일등악(一等樂)을 하사하라"가 있고, 중종실록 78권, 중종 29년 10월 6일 기해 1번째 기사에 "오늘 서연관에게 잔치를 베푼 뒤에 당상관에겐 반숙마(半熟馬) 1필씩, 당하관에겐 아마(兒馬) 1필씩 내리라."가 있다. 기로연(耆老宴)·영친연(榮親宴) 등에 임금이 정재(呈才, 가무)·여기(女妓)·악공(樂工) 등을 보내는 것을 사악(賜樂)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4등급이 있다. 그 중 일등악은 악사(樂師) 1인, 여기 20인, 악공 10인이 배치되는 것이다. 인원수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림은 이 두 기사와 부합된다. 참고로 악사는 지휘 또는 감독자이다.

근정전은 경복궁의 주 전각이다. 신하에게 조하(朝賀) 받거나 정령(政令)을 반포하는 정전(正殿)이다. 때로는 사신을 맞아들이기도 하고 양로연(養老宴)이나 위로연 같은 잔치를 베풀기도 하던 곳이다. 주지하다시피, 1395년에 창건된 전각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 그림은 소실되기 전의 모습이 되겠다. 당시의 모습이 그려진 유일무이한 그림이다. 돌 기단 위에 중층 구조이다. 치두와 잡상 모습까지 자세히 그렸다. 그러면서도 주제인 잔치 내용 때문에 한편으로 밀려나 작게 묘사되어 있다. 어도 역시 밀려난 정전을 근정문에 잇다보니 사선이 되었다. 앞쪽이 근정문일 터이고 동서에 일화문과 월화문이 보인다. 뒤편 다른 건물은 생략하고 숲과 백악산이 곧 바로 그려져 있다.

그림
작자 미상의 <중묘조서연관사연도(中廟朝書筵官賜宴圖>, 1535, 화첩, 종이에 채색, 42.7 × 57.5cm, 홍익대학교 박물관
근정전 앞뜰에 천막을 치고 잔치가 한창이다. 왕의 모습은 통상 그리지 않는 데, 윤진영의 책에는 아예 참석하지 않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때문에 자유롭고 평화로웠다는 주장이다. 시간이 꽤 흘렀을까 자리를 뜨는 사람이 여럿 보인다. 과음으로 흠뻑 취했을까 세 사람은 부축 받아 나가고 있다. 연주에 맞추어 춤추고 있는데 의상과 춤사위가 처용무처럼 보인다. 승지가 전하는 술잔을 한 사람이 나와 받고 있다. 천막 끝에 주탁(酒卓)이 놓여있고, 그 위에 두 개의 커다란 술 항아리가 놓여 있다. 서연관이 각각 소반을 앞에 놓고 둘러 앉아 있다.

참석자 명단이 첨부되어 있어 39명임을 알 수 있으나 화폭에 모두 담지는 않았다. 악공 역시 일등악보다 수가 적어 곡연(曲宴, 아주작은 연회)으로 보기도 하나 숫자는 의미가 없다고 본다.

맹자 진심장에 군자삼락(君子三樂)이 나온다.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고 형제들이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땅을 굽어보아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들을 얻어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첫 번째는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는 스스로 닦을 일이다. 아무래도 셋 중 으뜸은 가르치는 것 아닐까? 가르침에는 배움도 포함된다. 긍지가 되고 자부심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사연 장면을 그리게 하여 나누어 가졌다. 오래오래 기리기 위해 여러 점의 모사본도 제작되었다.

여중생들이 가을축제 준비한다며 연습장을 빌린다고 찾아왔다. 잊었던 것을 되찾았다는 들뜨고 활기찬 분위기다. 문득, 코로나19로 빚어진 변화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에 놀란다. 잊었던 것, 사라진 것이 너무 많지 않을까? 유익하고 바람직한 전통은 너나없이 잘 챙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거리도 그 중 하나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시인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