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흙에서 자라는 새로운 친구들과 더불어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흙에서 자라는 새로운 친구들과 더불어

이은봉 시인·대전문학관 관장

  • 승인 2023-07-05 08:42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clip20230704162502
이은봉 관장
나이가 들어가자 혼자 있을 때가 많다. 혼자 있어도 크게 외롭거나 고독하지는 않다. 이제는 고독과도 오랜 친구가 되었나 보다. 아니 혼자 있어도 함께 놀 수 있는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잘 가꾼 밭의 흙에서 자라는 오이와 토마토, 옥수수와 가지 등 농작물 친구 말이다.

사람만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개나 고양이를 친구로 삼으면서도 잘 산다. 개나 고양이와 친구가 되어 사는 사람은 다행이다. 외로움에 치를 떨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타자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이때의 타자가 개나 고양이인들 어떠하랴. 생각해보면 사람이 아닌 개나 고양이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사는 삶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은 사람만큼은 아니더라도 변덕이 심하다. 개나 고양이 등 변덕이 심한 동물은 사람만큼이나 비위를 맞추기 힘들다. 이들 동물의 비위를 맞추다 보면 차라리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을 친구로 두는 것이 낫겠다는 고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개별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젊었을 때는 이들 짐승 친구보다는 사람 친구를 좀 더 원하기 마련이다. 이들은 사람 친구가 없으면 너무 외로워 견디기 힘들어하기 일쑤이다. 사람들과 더불어 어우렁더우렁 사는 것만큼 사람의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없다.

친구가 없다고 생각할 때 대부분 사람은 불안해지고 초조해진다. 사람과의 소통이 끊어질 때 대부분 사람은 마음은 물론 몸도 가누기 힘들어한다. 이때 생기는 병이 흔히 말하는 우울증이다. 그래서 그럴까. 많은 젊은이가 혼자 있기를 두려워한다.

이들이 교회에 가거나 절에 가는 것도 실제로는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나 절에 나가게 되면 대부분 사람이 일체감 및 소속감을 느낀다. 일체감 및 소속감을 느끼면 거개(擧皆)의 사람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된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에게, 아니 목사님이나 스님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예수님 아래, 부처님 아래 하나가 되는 셈이다.

예수님, 부처님 아래 하나가 되면 외롭거나 고독할 까닭이 없다. 이들이 늘 챙겨주고 도와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내 매너리즘에 빠지기 마련이다. 오래지 않아 싫증을 내기 쉽고, 짜증을 내기 쉬운 것이 사람이다. 조금만 예민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내 교회나 절에 가는 일이 지루해지고 고루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거룩한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교회나 절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만큼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난만(爛漫)할 수밖에 없다. 교회나 절도 사람살이의 리얼한 사회적 공간이지 않은가. 어떤 일이든 부정적인 것들이 반복되면 곧바로 의심이 생기는 법이다.

나이가 좀 들게 되면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라도 사람살이의 일반이 시큰둥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직업의 일선에서 은퇴하게 되면 교회나 절이 주는 위안도 별로 신통치 않기 마련이다.

바로 이런 때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친구가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친구가 개나 고양이는 아니다. 개나 고양이처럼 이때의 친구도 물(物)이기는 하다. 동물, 식물, 광물이라고 할 때의 물(物) 말이다.

물(物) 중에 좀 더 은밀하게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것은 동물이기보다 식물이나 광물이다. 풀과 나무도 식물이기는 하지만 정작 나를 따듯하게 보듬는 식물은 농작물이다. 농작물은 언제나 흙이라는 광물을 어머니로 받아들여 세상에 태어난다. 요즈음에는 사람의 가장 근원적인 친구가, 아니 어머니가, 아니 한울님이 흙이라는 생각을 한다. 흙에서 태어나는 농작물이야말로 사람의 외로움과 고독을 씻어주는 참 생명이라고 받아들이는 셈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나는 흙에서 태어나는 농작물과 더불어 삶의 장단을 맞추고 있다.

/이은봉 시인·대전문학관 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