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상수연(上壽宴)

  • 오피니언
  • 춘하추동

[춘하추동]상수연(上壽宴)

김명숙 수필가

  • 승인 2023-07-04 17:20
  • 신문게재 2023-07-05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김명숙 수필가
김명숙 수필가
100세 시대!

시성(詩聖) 두보는 그의 시에서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하여 인간의 수명은 칠십 세를 넘기기가 매우 드물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는 갈마아파트에는 1980세대 가운데 100세를 넘게 사시는 분들이 여덟 분이나 계십니다. 이른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가 아니라 '인생일백고래희(人生一百古來稀)'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늘어나는 수명 가운데 가장 무서운 병은 나이가 드는 병이고, 다음으로 무서운 것은 사랑하는 자손들로부터 냉대를 받는 것이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나이가 들어 수족이 불편 할 때 애지중지 모실 자녀들이 있는지요.

사람의 몸에는 각종 질병들이 많이 발생하지만 의학의 발전과 좋은 식자료들로 질병들을 고칠 수 있고, 영양을 채울 수 있지만, 나이를 먹는 것과 자손들에게 냉대받는 것은 어떤 의학기술로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 100세를 사신 노모를 위해 잔치를 벌인 부여군 외산면 어느 효자로 소문난 '상수연(上壽宴)'행사에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600년을 이어온 종가인데 한 마을에서 200년 넘게 살아온 파평 윤씨 정정공파 12대 종부 채복록 여사의 상수연 잔치였습니다.

200년을 한 마을에서 종가를 지키기 위해 사셨다 합니다. 자손들은 직업을 찾아 시골을 떠나고 늙으신 노모가 홀로 남아 꿋꿋한 삶을 사셨다 합니다. 그러나 파평 윤 문의 이 가족의 자손들은 어머니를 현대판 고려장인 요양 병원에 모시지 않고 서울로 모셔가 함께 살았다 합니다. 그리고 주말이면 어머니께서 지키며 사시던 옛집을 찾아 하룻밤을 지내고 상경하기를 반복했다 합니다.

'상수연'의 '상수'는 사람의 수명을 상, 중, 하로 나눌 때 가장 많은 나이로써 100세를 말하지요. 의학기술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있지만 100세를 맞는 장수하신 분은 흔한 게 아닙니다.

상수연을 맞이한 어머니께서는 100년을 살면서 앞만 보고 사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잔치에 오신 손님들과 자손들에게 "지난 세월이 먼지와도 같이 사라진 세월이라" 표현하시면서 "지금은 눈도, 귀도 어둡고 다리 힘도 빠져 자손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내 힘으로 일어나 밥 먹고 세수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긴다. 생각해 보면 100년이란 세월도 하루, 한나절 같구나. 젊어서 이곳 무술에서 새벽 별 보고 일어나 왼종일 들에서 일하다가 저녘 달빛 보고 들어와서는 아궁이에 불을 때서 저녘 밥상을 차렸으며, 쉴 틈도 없이 바빠 농사짓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0년이라니... 화 냈던 일, 형편 때문에 하지 못한 일들만 생각난다. 100년이라지만, 다시 돌아보면 한여름 밤의 꿈만 같다. 이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인사는 하고 가야겠다. 지난 100년 동안 나를 아는 분들과, 내가 아는 모든 분들, 다 고맙다.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모두 다 행복하세요."라고 인사말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상수연 잔치를 마치신 후 진짜 생신 다음 날 새벽 소천하셨다는 부고를 듣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요. 100년을 사시고 자손과 친인척들을 상수연에서 모두 만나시고 덕담을 나누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날 하신 말씀이 상수연 잔치를 하며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 됐던 것이지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가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인생 끝의 모습입니다.

이는 한 가정이 자연스레 해체되는 모습이지요. 젊은 시절 한참 자식들이 태어나 자랄 때 식구들이 모여 웃고 울고 떠들고 먹으며 집안이 시끌벅쩍하게 들썩거리던 대가족의 기쁨과 그 사랑은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돼버렸지요.

세월 따라 그런 오붓한 시절은 점차 사라지고 자식들은 제각기 자기 일, 자기 가정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고, 버팀목이던 부모님은 병들어 쇠잔해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떠나면 그 가정은 허물어지듯 해체돼 버린다는 사실!

그러나 백 세를 사시면서도 요양원에 모셔지지 않은 이 할머니는 자손들의 효성으로 인해 건강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100세를 사신 부모님께 해드리는 '상수연(上壽宴)'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