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속도를 지탱하는 시간이란 본디 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다. 창세기의 신화에 나와 있는 대로 6일간의 창조와 7일째의 휴식이 말해주는 것처럼, 시간은 신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세에 들어 시계가 발명되면서 시간은 하늘에서 서서히 인간의 영역으로 옮아오기 시작했다. 여기에 고리대금업이 성행하고 이자율이 더해지면서, 시간은 곧 황금(Time is Gold)이 되었다. 시간이 신으로부터 완전히 인간의 것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시간이 인간의 영역, 곧 황금으로 자리하면서 인류의 문명은 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교통수단 역시 시간과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속도라는 현대의 이념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1908년 경부철도가 개통되었을 때, 육당 최남선은 이 열차가 흡사 나는 새처럼 빨랐다고 했거니와 중세의 신분 혹은 계층 사회에 시간적인 의미에서의 균질성, 평등성을 부여했다고 했다. 가령, 남대문역(서울역)을 출발하는 열차는 양반이라고 해서, 혹은 대감이라고 해서 기다려주지 않은 것이다. 출발 시간이 되면 모두 기차에 올라야 했고, 그렇게 동시에 출발해야 했다. 말하자면 이때 개통된 경부선 열차는 모두에게 시간상의 평등을 주었다.
요즈음, 대부분 도시에서 고속버스 터미널이 고속도로 인근에 건설되는 것은 모두 시간의 효율성, 혹은 평등성을 위해서이다. 복잡한 시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시외로 빠져나가기 위한 최적의 조건 때문이다. 그런데 공항버스를 비롯한 대전의 주요 노선 버스는 복합터미널에서 곧바로 대전IC로 나가지 않는다, 둔산에 한번, 롯데호텔 인근에서 또 한 번 정차한 다음 북대전IC로 빠져나간다. 어림잡아 30분 정도를 시내에서 허비하고 있는 셈이다. 나갈 때 그러했으니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출퇴근 시간과 겹치게 되면 대전복합터미널까지 오는데 거의 1시간 가까이 소요된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터미널에 벌써 도착해서 집으로 귀가해야 할 시간인데도 시내에서 계속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이런 정체현상은 복합터미널을 이용하지 않는 승객에게도 결국은 동일한 시간의 낭비를 가져온다. 터미널에 일찍 도착했다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일찍 귀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합리성에도 불구하고 공항버스 등이 복합 터미널에서 곧바로 대전IC로 나가지 못하는 것에는 어떤 합당한 근거가 있어서 그러한 것인가. 인구나 이용자가 많아서. 아니면 정부 청사가 곁에 있어서 그러한가. 그렇다면, 서울 강남터미널의 고속버스는 잠실에 인구가 많으니 그곳에 들러서 가야 하고 과천에 정부청사가 있으니 이곳 또한 거쳐 가야 옳지 않은가.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전복합터미널은 많은 투자를 거쳐서 만든,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훌륭한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출구에 쓰여있는 모토가 우선 남다르지 않은가. 세계와 한국의 중심, 대전의 중심, 곧 복합터미널이라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복합터미널은 썰렁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어찌 이곳을 대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가. 터미널은 북적이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복합터미널에는 여러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비로소 도달할 수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 도착한 승객들이 고속도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온 만큼의 시간을 시내에서 더 낭비해야 한다. 이럴 거면, 동구나 중구 혹은 대덕구민들을 위해 복합터미널에서 대동 등을 거쳐서 판암IC로 나가는 경우의 수도, 문화동 등을 거쳐 남대전이나 서대전 IC로 진입하는 경우의 수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지 않는가.
현대적인 의미에서 시간은 모두에게 빠르고 똑같이 효율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시간이 누구에게는 황금(Gold)이고 누구에게는 돌(Stone)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런 차별 없는 공평이야말로 현 정부가 추구하는 공정과 상식이 아니겠는가.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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