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돌팔매·말타기·수박(手拍)·씨름·창쓰기·칼쓰기·활쏘기 등 다양한 무예가 전한다. 그 중 택견은 2011년 11월 28일 무예로서는 최초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맨손무예로 치명적 공격성이 없는 것이 오히려 높이 평가되었다고 한다. 1983년 무형문화재 76호로 지정되어 보전되어 왔으나 아직 대중화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8년 11월 26일에는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확정되었다. 남북이 함께 신청한 민속놀이다. 1980년대 민속씨름과 같이 한때는 큰 인기를 누리며 성장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인기저하, 저변축소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대쾌도(大快圖), 유숙, 1846, 세로 105㎝×가로 54㎝. 서울대학교박물관 |
지난해 유숙의 <오수삼매도>를 소개한 일이 있다. 유숙은 전기(田琦)·김수철(金秀哲)·이한철(李漢喆)·유재소(劉在韶) 등과 함께 김정희의 화평을 통해 지도를 받았다. 여항문인들의 모임인 벽오사(碧梧社) 일원이기도하다. 다양한 소재를 잘 다루었다. 김정희류의 남종문인화풍을 따랐으나 진경산수화·풍속화·화조화에서는 김홍도(金弘道)의 영향이 보인다.
마치 드론을 띄워 사진 찍은 것 같은 그림이다. 휘돌아 나간 성곽위에서 보았을 수도 있겠다 싶다. 마을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화제 '대쾌도' 옆에 "병오년 온갖 꽃이 화창하게 핀 시절, 격양세인이 강구연월에 그리다.(丙午 萬化方暢時節 擊壤世人 寫於康衢煙月)"라는 화제가 있다. 그에 의하면 단오쯤인 것으로 보인다.
유숙이 다른 작품에 '격양세인'이란 호를 사용한 일이 없으며, 양각방인(陽刻方印)도 해독되지 않아 유숙의 그림으로 단정하지 못하고 있다. 유숙의 그림이 맞는다면 도화서 화원이 되기 전인 20세 때 그림이 된다.
축제를 즐기는 현장 느낌 그대로, 즉흥적 별호를 만들어 썼을 수도 있으리라. 격양세인은 땅을 두드리며 즐겁게 사는 세상 사람이란 뜻이다. 고대부터 이상향으로 불리던 태평성대의 모습, 고복격양(鼓腹擊壤)에서 인용한 것이리라. 음식 만드는 연기가 거리에 가득하다는 강구연월 역시 태평성대를 이르는 말이다.
한데, 1846년 당시 시대상황은 태평성대로 보이지 않는다. 안동 김씨 세도가 하늘을 찌르는 정치적 혼란기였다. 게다가 전국에 전염병이 창궐하고, 청천강 유역 대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로 나라가 바람 잘날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을 축제는 열렸고, 작가 역시 크게 유쾌한 그림이라 명명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법하다. 축제가 위무의 역할, 희망의 등불, 용기의 화신, 화합의 장이 되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축제는 즐거움으로 근심 걱정 덜어내는 유쾌한 소통의 장이다.
어색한 투시도법의 직선으로 된 성곽이 좀 어색하여 눈에 먼저 들어온다. 자세히 보면, 그 위에서도 진지하게 즐기는 관중 모습이 그려져 있다. 무리의 한 복판에 씨름과 택견 겨루기가 한창이다. 김홍도의 <씨름도>에 비해 구경꾼 표정에 절박감이나 긴장감이 덜하다. 선수의 동작도 박진감이 떨어진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모사한 것으로 보이는 유사 <대쾌도>가 있다. 관지 위치가 다르고, 상단에 가마와 선비 무리, 기녀가 추가되어있다. 인물 배치를 제외한 풍광의 묘사 기법은 다르다. 어쨌거나 모사했다는 것은 오래오래 널리 기억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잔 술 파는 좌판을 비롯하여 축제장 이면 모습도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엿장수는 이제 등장한 것일까, 엿판에 엿이 가지런하다. 당시 볼 수 있었던 의관을 모두 보여주려 했나보다. 각양각색의 행색,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더불어 즐기고 있다. 그렇다 축제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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