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 부소장 |
인간의 건강과 미래를 위해 원래 있던 것을 없애는 '제로 노력'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제로 성분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무연휘발유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우리 주변의 주유소를 지나다 보면 휘발유, 경유 그리고 등유의 리터당 가격이 표시된 입간판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아주 가끔 무연휘발유라 표시된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무연휘발유가 무슨 뜻인지 아는 분 보다 모르는 분이 더 많을 것 같다.
1960년대에 현재의 우리가 납 범벅인 세상에서 살아가지 않도록 엄청난 기여를 한 사람이 있다. 미국의 과학자인 클레어 패터슨 박사(1922-1995)가 바로 그 사람이다. 패터슨 박사는 운석 성분을 분석해서 지구의 나이가 45억 5000만 년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으로 더 유명하다. 그전까지는 지구의 나이를 추정하는 데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었기에 그 업적은 실로 과학계에 큰 획을 그었다. 이 과정에서 패터슨 박사는 1920년대 이후에 환경 중의 납 농도가 현저하게 증가하는 것을 관찰했고 이 현상을 유연휘발유의 탄생과 연결 지었다.
미국에서 자동차 산업과 정유산업이 급성장하고 있을 당시, 자동차 연료로 사용되는 휘발유는 이른바 '노킹현상'(내연기관의 실린더 안쪽에서 이상연소로 인해 망치로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나는 현상)이 자주 발생했다. 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연구개발이 이뤄졌고 마침내 테트라에틸납(tetraethyllead)이 포함된 유연휘발유가 출시됐다. 유연휘발유는 골칫거리였던 노킹현상을 해결해 자동차 산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됐고 더불어 정유·화학산업도 동반하여 발전하게 됐다. 하지만 패터슨 박사는 유연휘발유가 상업적으로 등장한 시기와 자연 중에 납 농도 증가 패턴과 연관이 있다고 판단하고 유연휘발유 퇴출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1965년에 논문 발표와 함께 본격적인 반대운동을 벌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기업으로부터 수많은 압박을 받게 된다. 유연휘발유와 납 농도 증가의 상관성을 과학적 데이터를 통해 증명하고, 수많은 논쟁을 펼친 끝에 정치권의 힘을 얻게 돼 1986년에 유연휘발유를 무연휘발유로 바꾸는 데 성공하게 된다. 이런 정책적 결정은 식료품의 납 규제로까지 이어져 인체와 환경의 납 오염도를 크게 낮추는 데 기여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연휘발유가 1987년부터 시중에 공급되어 판매됐고 유연휘발유는 1993년에 판매 금지됐다. 약 6년 동안은 유연휘발유와 무연휘발유가 공존한 시기였다.
2011년에는 국제연합에서 사용금지를 결정했고 2021년에 알제리를 마지막으로 유연휘발유는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그러면 아까 언급된 노킹현상은 어떻게 됐을까? 납을 대신해 MTBE(methyl tert-butyl ether)라는 대체제가 사용되고 있지만 이 물질도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가 있어 또 다른 대체제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만약에 패터슨 박사가 유연휘발유 사용을 반대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국민 2명당 1대의 자동차를 보유한 시대에 국민의 대부분이 납중독인 상태로 살아가고 있지 않았을까? 내연기관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전기, 수소를 사용하는 저공해 차량들이 늘어가고 있지만 내연기관의 시대가 완전히 끝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인류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끊임없이 해결하고자 많은 노력을 해왔다. 앞으로는 어떤 것을 없애는 노력으로 제로의 시대를 만들어가게 될지 기대가 된다. 제로의 시대인 요즘, 주변에 제로로 만들어야 할 것들이 없는지 잘 살펴보자. 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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