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
자치단체장의 주민 직선은 지방자치 핵심 원리인 '지방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제도다. 지방민주주의는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지역주민의 대표성을 가지고 주민의 의사와 통제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는 원리다. 지방민주주의는 지방자치의 또 다른 원리인 '지방분권'과 대비된다. 지방분권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 여건과 수요에 따라 정치와 행정을 펼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권한과 책임이 중앙정부로부터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민주주의와 지방분권의 원리는 지방자치단체의 두 가지 정치적 정당성(legitimacy)을 뒷받침해준다. 첫째, 지방분권 원리는 국민국가 단위의 헌정 질서 안에서 지방자치단체가 국가로부터 정당성을 부여받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의 통치권을 가진 중앙정부가 특정 관할구역의 자치권을 위임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는 해당 지역의 구속력 있는 통치 권한을 가진다. 둘째, 지방민주주의 원리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주민의 정치적 동의를 얻고 책무를 지는 민주적인 통치 기제를 통해 정당성을 부여받을 것을 요구한다. 결과적으로 지방민주주의 원리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인이 해당 지역주민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아직 지방자치제도가 국민 신뢰를 충분히 쌓지 못한 원인은 지방자치 담론과 제도화가 지나치게 지방민주주의보다 지방분권 원리에만 집착했던 데서도 찾을 수 있다. 민선 자치 부활 이후 지방정치인을 위시한 지방의 엘리트 집단은 줄기차게 지방분권을 요청해왔다. 하지만 '국세 대 지방세' 비율로 상징되는 자치재정권을 포함한 지방분권의 성적은 초라하다. 더딘 지방분권의 배경에는 중앙정치인과 관료의 저항만큼이나 지방엘리트에 대한 지역주민의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지방정치에 대한 불신 속에서 중앙의 많은 권한이 지방으로 내려왔을 때 그 권한을 누가 행사하는가에 생각이 미치면 지방분권을 흔쾌히 지지할 주민은 많지 않다.
주민을 지방분권의 적극적인 조력자로 만들고 성숙한 지방자치로 가기 위해서는 지방민주주의 원리와 제도화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주민이 '가까운 정부가 좋은 정부'라는 것을 인식하고 지방분권의 지지자가 되기 위해서는 4년 주기 유권자 경험과 역할만으로는 부족하다. 28년 전 관료문화 혁신을 끌어냈던 대의적 지방민주주의 한계는 명확하다. 주민의 의사전달과 통제기제로서 선거가 충분히 효력을 갖지 못하면서 지역의 정치·행정 엘리트들이 주인-대리인 관계를 망각하고 그들만의 게임에 몰두한다. 삶의 중요한 부분에 대한 책임과 운명을 엘리트에게 맡기면서 주민은 주인으로서의 주체성과 책임 의식을 잃어간다. 정치적 무관심과 낮은 정치적 효능감은 낮은 투표율로 이어지고 '축소된 민주주의'와 지방정부의 정당성 위기로 귀결된다.
이미 선진국의 지방자치는 대의민주제를 보완하고 주민의 주인의식을 키우는 데 초점을 둔 민주주의 대안들을 실험해가고 있다. 주민참여예산제, 숙의민주제, 풀뿌리민주제 등이 대표적 예이다. 아쉽게도 윤석열 정부 들어서 지방민주주의는 고사하고 지방분권의 담론마저 수그러들고 있다. 출범 1년을 맞은 대전광역시를 포함한 많은 지방자치단체는 색깔론을 들어 주민참여예산제를 포함해 어렵게 닦아왔던 지방민주주의의 확장된 경로를 지우는 데 급급하다. 역사는 향후 몇 년을 지방자치의 후퇴기로 기억할 가능성이 크다. 지방시대 지방자치제도가 소중한 것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지방민주주의 혁신의 혜안을 가져 보기 바란다.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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