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성숙한 지방자치로 가기 위한 확장된 지방민주주의의 길

  • 오피니언
  • 세상보기

[세상보기]성숙한 지방자치로 가기 위한 확장된 지방민주주의의 길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 승인 2023-06-29 10:20
  • 신문게재 2023-06-30 19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자치단체장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민선 자치가 부활한 지 28년이 흘렀다. 성년의 나이를 훌쩍 넘었지만 성숙한 지방자치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래도 민선 자치가 가져다준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는 많다. 무엇보다 민선 자치는 공무원의 관료주의와 권위주의를 해소하는 데 공헌했다. 30년 전 관공서만 가면 고압적인 공무원 태도와 핑퐁 또는 도돌이표로 상징되는 행정 관행 때문에 기분 상하는 일이 흔했다. 민선 자치 출범 당시만 해도 주민에 의한 단체장 직선의 규칙 변화가 백약이 무효했던 공무원의 권위주의 태도 변화를 가져오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많지 않다.

자치단체장의 주민 직선은 지방자치 핵심 원리인 '지방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제도다. 지방민주주의는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지역주민의 대표성을 가지고 주민의 의사와 통제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는 원리다. 지방민주주의는 지방자치의 또 다른 원리인 '지방분권'과 대비된다. 지방분권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 여건과 수요에 따라 정치와 행정을 펼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권한과 책임이 중앙정부로부터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민주주의와 지방분권의 원리는 지방자치단체의 두 가지 정치적 정당성(legitimacy)을 뒷받침해준다. 첫째, 지방분권 원리는 국민국가 단위의 헌정 질서 안에서 지방자치단체가 국가로부터 정당성을 부여받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의 통치권을 가진 중앙정부가 특정 관할구역의 자치권을 위임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는 해당 지역의 구속력 있는 통치 권한을 가진다. 둘째, 지방민주주의 원리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주민의 정치적 동의를 얻고 책무를 지는 민주적인 통치 기제를 통해 정당성을 부여받을 것을 요구한다. 결과적으로 지방민주주의 원리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인이 해당 지역주민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아직 지방자치제도가 국민 신뢰를 충분히 쌓지 못한 원인은 지방자치 담론과 제도화가 지나치게 지방민주주의보다 지방분권 원리에만 집착했던 데서도 찾을 수 있다. 민선 자치 부활 이후 지방정치인을 위시한 지방의 엘리트 집단은 줄기차게 지방분권을 요청해왔다. 하지만 '국세 대 지방세' 비율로 상징되는 자치재정권을 포함한 지방분권의 성적은 초라하다. 더딘 지방분권의 배경에는 중앙정치인과 관료의 저항만큼이나 지방엘리트에 대한 지역주민의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지방정치에 대한 불신 속에서 중앙의 많은 권한이 지방으로 내려왔을 때 그 권한을 누가 행사하는가에 생각이 미치면 지방분권을 흔쾌히 지지할 주민은 많지 않다.



주민을 지방분권의 적극적인 조력자로 만들고 성숙한 지방자치로 가기 위해서는 지방민주주의 원리와 제도화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주민이 '가까운 정부가 좋은 정부'라는 것을 인식하고 지방분권의 지지자가 되기 위해서는 4년 주기 유권자 경험과 역할만으로는 부족하다. 28년 전 관료문화 혁신을 끌어냈던 대의적 지방민주주의 한계는 명확하다. 주민의 의사전달과 통제기제로서 선거가 충분히 효력을 갖지 못하면서 지역의 정치·행정 엘리트들이 주인-대리인 관계를 망각하고 그들만의 게임에 몰두한다. 삶의 중요한 부분에 대한 책임과 운명을 엘리트에게 맡기면서 주민은 주인으로서의 주체성과 책임 의식을 잃어간다. 정치적 무관심과 낮은 정치적 효능감은 낮은 투표율로 이어지고 '축소된 민주주의'와 지방정부의 정당성 위기로 귀결된다.

이미 선진국의 지방자치는 대의민주제를 보완하고 주민의 주인의식을 키우는 데 초점을 둔 민주주의 대안들을 실험해가고 있다. 주민참여예산제, 숙의민주제, 풀뿌리민주제 등이 대표적 예이다. 아쉽게도 윤석열 정부 들어서 지방민주주의는 고사하고 지방분권의 담론마저 수그러들고 있다. 출범 1년을 맞은 대전광역시를 포함한 많은 지방자치단체는 색깔론을 들어 주민참여예산제를 포함해 어렵게 닦아왔던 지방민주주의의 확장된 경로를 지우는 데 급급하다. 역사는 향후 몇 년을 지방자치의 후퇴기로 기억할 가능성이 크다. 지방시대 지방자치제도가 소중한 것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지방민주주의 혁신의 혜안을 가져 보기 바란다.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