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희 NH농협생명 농협세종교육원 부원장 |
나날이 발전하는 세상처럼 보험 분야에서도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그동안 보험은 대면 채널을 통해서만 가입이 가능했지만 최근에는 비대면 가입이 가능한 보험상품이 출시됐고, 여기서 더 나아가 보험과 IT(정보기술)를 결합해 개인의 건강관리 노력에 따라 보험료를 할인해 주는 건강증진형 보험상품도 판매 중이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이 일으키는 혁신이 보험업계도 조금씩 바꾸고 있지만, 그래도 보험 영역의 변화 속도는 다른 분야에 비해 유독 더디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보험이 갖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보험 산업이 가장 발달한 미국의 어느 보험 마케팅 연구 회사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설문의 내용은 방금 보험을 가입하고 나오는 소비자 1000명에게 보험 가입동기를 묻는 것이었다. 소비자들은 어떻게 대답했을까?
"보험이 필요해서요" "상품이 좋아 보여서요"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요" 등의 답변을 했을 것 같지만, 무려 80%가 넘는 사람들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직원이 꼭 가입하라고 열심히 권유해서요"
공감이 가시는가? 더 멋진 대답을 기대했다면 실망했을 수도 있겠다. 싱겁게도 직원이 보험 가입을 열심히 권유해서 가입했다니…. 한 번쯤 보험 가입을 권유받아본 경험이 있는 분 이라면 저 대답이 이해가 되셨으리라. 생각해보시라. 살면서 '난 지금 보험을 가입해야겠어'라고 마음을 먹고 보험에 가입해본 적이 있는가(자동차보험 같은 것은 제외하고 말이다). '지금 몸이 너무 안 좋은데 보험 가입해야 할 것 같아' '옆집 사는 누구는 보험에 가입했다는데 나도 얼른 가입해야겠는걸' 이런 결심으로 보험에 가입한 적이 있는지 떠올려보시면 되겠다. 과연 있으신가? 자율주행차가 등장하고, 식당에선 로봇의 서빙을 받으며,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금융거래부터 먼 외국의 호텔 예약까지 가능한 이 시대에도 우리의 보험 가입은 변화가 더디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딜 것 같아 보인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두렵고 어려운 상황을 회피하고자 하는 '과대한 낙관'과 '도래하지 않은 손실에 대한 불감증', 나아가 '극도의 보험 혐오증' 등일 것이다.
보험은 철저하게 타인의 권유, 즉 자기 자신과 가족에 닥칠 위험을 스스로 연상하기보다는 누군가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근거를 토대로 구체화해줄 때 비로소 가입에 대한 필요성을 갖게 되는 것이리라.
매일 뉴스에서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의 숫자를 보여주고 암에 걸리는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들어도, 사람들은 이러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사실에 귀 기울이거나 깊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모바일에 더 발달 된 보험 안내 수단이 등장한다고 해도, 보험 가입이 빠르게 흐르는 세상만큼 혁신적으로 바뀌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하는 맨투맨(man to man) 방식이 가장 효과적인 보험 권유 및 가입 수단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차가운 기계가 아닌, 같은 입장과 처지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지난 주말 주중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 겸 영화를 봤다. 영화의 제목은 <영주>로,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부모를 잃은 남매의 경제적 고통과 교통사고 가해자에 대한 용서와 화해를 다뤘다.
세상이 기술의 발달에 따라 좋게만 변해갈 것 같은 지금에도, 이렇게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경제적 고통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필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스마트한 세상에서도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죽는다는 당연한 현실을 잠시 잊고 사는 건 아닐까.
진동희 NH농협생명 농협세종교육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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