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유선 책임연구위원. |
'취준생'이라는 명칭은 오래전에 생겼고, 높은 청년실업률이 이를 뒷받침한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라는 조건은 취업을 해도 번아웃되거나 질병으로 일을 그만두는 '취업과 퇴사'라는 노동서사를 반복하는 청년의 증가가 그러하고, 결혼 전 경력단절여성에 합류하는 청년 여성의 증가도 그러하다. 연애나 결혼이 산업이 된 것도 그러하다. 연애를 포기하는 청년도, 결혼 대신 비혼을, 결혼해도 무자녀를 선택하는 청년의 증가도 그러하다.
자신의 생존도 책임지기 어려운 '각자도생'의 시대에 가족을 만든다는 것은 제 발로 빈곤층으로 걸어가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청년에게 '결혼할 나이' 혹은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정상가족'은 실천하기 어려운 인생의 과업이고, 노후의 불안과 빈곤을 예상하게 하는 요소들이다. 물론 좋은 일자리 취업과 살만한 전셋집(자가는 어렵고 월세는 벗어난) 마련 또한 힘든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인구절벽이나 지방소멸이니 하는 협박성 언어들이 정책영역에 마구잡이로 통용되면서,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떠나면 떠난다고, 결혼을 못하면 안 한다고, 자녀를 출산하지 않으면 안 한다는 비난을 온몸으로 받고 있다. 청년들이 누구를 보살피고, 돌보며, 책임지는 관계를 갖기를 희망한다는 것은 무모한 사회의 바람인데도 말이다.
대전의 한 대학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P 씨는 30대 중반 남성이다. 논문 주제를 검토하고 관련 책을 읽기도 바쁘지만 생활비를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박사 학위가 일자리 보장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법적 청년인 39세가 가까워질수록, P 씨 걱정은 학자금 대출 이자보다 높은 비율로 불어나고 있다. 이대로는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모두 안 될 거 같다.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H 씨는 30대 중반 여성이다. 정규직이지만, 무늬만 정규직인 무기계약직이다. 정규직과는 급여나 다른 근로조건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다. 알면서 모른 척하고 몰라서 참는 것도 많다. 잘리진 않겠지만, 정년까지 일한다고 해서 노후가 보장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일은 많고 급여는 적다. H 씨는 운 좋게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청년임대주택에 선정되어 거주하고 있다. 39세가 넘으면 '청년'임대에서 '국민'임대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임대주택을 벗어나기 쉽지 않아 보인다.
Y 씨는 30대 후반의 맞벌이 부부다. 옆 아파트에 사시는 부모님이 없으면 부부 가운데 하나는 직장을 다닐 수 없다. 아마도 그건 남편보다 임금이 적은 Y 씨의 몫일 것이다. Y 씨는 경력단절여성이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육아시간을 쓰며 엄마 심기를 살피고 아버지의 만성적 허리통증이 심해지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사시사철 언제 아이에게 올지 모르는 감기도 대비해야 하고 배우자의 야근과 아이의 방학, Y 씨의 쌓이는 업무 등을 예측 가능하게 관리해야만 경력을 지속할 수 있다. 직감과 눈치까지 동원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부모님과 배우자, 아이 모두의 협력이 필요한 사안인데, 누구 하나 삐끗하면 가족의 일상이 무너지고 마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종합적이고 기술적으로 집안을 경영하는 이가 바로 일하는 엄마, Y 씨다. 일하면서 이런 육아와 돌봄을 경험하고 있는 Y씨가 둘째를 계획한다는 것은 제정신이면 할 수 없는 결정이다.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은 깨졌고, '가장 아버지 + 전업주부 엄마'라는 가족 공식도 무너졌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일해야만 가족이 유지되는 사회다. 1인 가구 증가가 새롭지 않은 이유다. 학교를 졸업하면 취업하고, 연애하다 결혼하고, 결혼하면 출산하는 사회는 이제 없다. 원한 건 아니었지만, 지금 청년들이 발 딛고 있는 사회가 그렇다.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불가능한 사회를 만든 것은 청년이 아니다.
/류유선 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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