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자 : 未(아닐 미/ 아직 ~~하지 못하다.) 亡(망할 망/ 죽을 망) 人(사람 인)
출 처 : 左傳(좌전) 노장공(魯莊公) 28년(노장공 28년)
의 미 : 전쟁터나 기타 지역 및 이유로 남편보다 먼저 죽지 못한 부인
민족 최대의 비극이라고 이야기 하는 6. 25전쟁이 일어난지 벌써 73년이 되었다.
약 3년간에 걸친 전쟁은 한반도가 재기 불능상태의 환경으로 초토화 되었다.
각종 발표나 통계자료마다 차이가 있지만 인명피해만 살펴보더라도 한국군 및 유엔군은 전사 17만 8569명, 부상 55만 5022명에 실종 및 포로가 4만 2769명으로 총 77만 6360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이 한반도에서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로 남아있다.
한편 북한군은 사망 50만 8797명 실종 및 포로 9만 8599명 등 60만 7396명의 피해가 났다.
이에 따른 민간인 피해는 100만이 넘고, 헤아릴 수 없는 이산가족(離散家族)이 발생하여 민족 최대의 비극적인 사건은 역사에 기록되고 그 후유증은 아직까지도 아물지 않는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미망인(未亡人)이란 남편이 죽고 홀로된 여자(동아 대국어사전, 1999년)로 정의된다.
그 어원은 본래 백년해로(百年偕老)에서 출발한다. 곧 '결혼하면 부부(夫婦) 두 사람이 백년(百年)간 함께 늙어가자(偕老)는 약속'으로 출발한 것인데, 어쩌다 남편이 일찍 죽고 아내만 남아 있으니 그 백년해로의 약속(約束)은 지켜지지 못하고 부인(婦人)만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말에서 미망인(未亡人) 곧 '아직 죽지 못하고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요즈음은 미망인을 그저 남편이 없는 부인을 통틀어 말하는 것으로 과부(寡婦)를 지칭하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6. 25전쟁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아내와 자식을 두고 나라를 구하려고 낯선 산하에서 용감히 싸우다 유명을 달리하였다. 이로 인하여 남겨진 아내는 전쟁미망인(戰爭未亡人)으로 남게 된 또 따른 비극의 산물이 된 것이다.
초(楚)나라의 영윤(令尹/지금의 국무총리 해당) 자원(子元)이 문(文)부인(문왕의 부인)을 유혹하기 위해 궁실 옆에다 건물을 짓고 만(萬/ 춤 이름)을 추게 하였다. 그 음악 소리를 듣고 부인은 울면서 말했다. "선왕(죽은 남편)께서는 이 춤을 군대를 훈련하는 데 사용하셨는데. 지금 영윤은 원수들을 치는 데는 생각이 없고 미망인(未亡人)의 곁에서 하고 있으니 이상하지 아니한가." 시종 하나가 이 사실을 자원(子元)에게 알리니 자원이 말했다. "부인은 원수를 잊지 않고 있는데 오히려 내가 잊고 있었구나." 가을에 자원은 600승의 전차를 동원하여 정(鄭)나라를 치고 길질성(桔?城)의 문(門)에 들어갔다.
이 고사는 《좌전(左傳) 〈노장공(魯莊公) 28년〉》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문헌상 '미망인(未亡人)'이란 말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길질의 문은 정나라 교외에 있는 성문이다. '미망인'은 다음의 전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백희(伯姬)가 송공(宋公)에게 시집가는데 계문자(季文子)가 호위로 송(宋)나라에 갔다가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성공(成公)이 위로의 연회를 베푸는 자리에서 계문자가 시경(詩經)을 인용하여 성공(成公)과 송공(宋公)을 칭송한 후 출가한 백희의 앞날을 축복했다. 백희의 어머니 목강(穆姜)이 방에서 나와 재배(再拜)하며 말했다. "대부(大夫)께선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당신은 돌아가신 선왕(先王)을 잊지 않고 뒤를 이은 현재의 왕에게까지 충성을 다하고, 미망인(未亡人)인 나에게까지 베푸셨습니다. 대부의 수고에 감히 절합니다." 그러고는 또 시경의 다른 구절을 노래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 후 5년 뒤 위(衛)나라의 정공(定公)이 병이 들자 (첩실인)경희(敬姬)의 아들 간(?)을 태자로 삼게 하였다. 겨울인 10월에 위정공(衛定公)이 죽었다. 부인 강(姜)씨가 곡을 마치고 쉬면서 보니 태자는 아무런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부인은 이를 보고 식음을 전폐하고 탄식했다. "저 못난 자식은 틀림없이 나라를 망치고 말 것이로되, 먼저 이 미망인(未亡人)을 학대할 것이다. 아, 하늘은 위나라에 화를 내렸는가? 내가 전(강 부인의 아들)이 사직 맡는 것을 말리지 못하다니"하고 한탄하였다.
이 이야기는 좌전(左傳)에 나오는데 미망인(未亡人)이란 남편이 사망하면 처(妻)도 함께 죽어야 하는데 아직 생존하고 있다는 뜻으로 처가 자기를 겸손하게 낮춰서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전쟁미망인 분들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점 그 숫자가 줄어든다. 젊어 조국을 위해 산화한 용감한 남편을 둔 미망인분들의 마지막 삶을 국민들은 그 숭고함을 기리고 국가적 차원에서 절실한 대우가 필요하다. 그래야만이 국가를 위해 헌신할 용사들이 배출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6. 25 사변은 우리에게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깊은 상처를 남긴 가혹한 역사의 현실인 것이다.
장상현 /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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