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 공동대표 |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 4조 60항에는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하여 3개월 내 한반도 모든 외국 군대 철수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의를 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유엔도 1953년 8월에 정전협정을 끝내고 평화 상태로 전환하도록 권고했었다. 그러나 미국과 다른 나라들의 방관, 남북의 적대적 공생 관계 속에서 평화협정은 체결되지 못한 채 70년 세월이 흘렀다.
원래 38도선에 세워진 철책은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소련과 미국이 각각 일본군의 항복을 받고 무장을 해제하기 위해 임시로 정한 경계선이었을 뿐이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38도선을 경계로 한 양국의 분할 점령이 없었다면 6·25전쟁은 일어났을까. 2차 세계대전 후 구축된 한반도를 둘러싼 나라들의 패권 다툼이 없었다면 6·25전쟁 이후 70년이 지났음에도 정전상태에 있었을까.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종전선언도 평화협정도 맺지 못할 수 있을까. 왜 남북의 위정자들은 군비증강과 상호 비방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을까.
정전 70년을 생각하며 지난주 수요일 씨네인디U에서 영화 ‘크로싱’(CROSSINGS)을 시민들과 함께 봤다. 2015년 전 세계 15개국 30여 명의 국제여성 평화활동가들이 한반도의 전쟁 종식과 평화로운 한반도를 위해 북에서 남으로 DMZ를 횡단하는 여정을 담은 다큐 영화였다. 국제여성평화걷기(WCD) 기획과정에서부터 실제 DMZ를 걷는 여정을 담은 대담하고 뜻깊은 활동에 가슴이 뛰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여성들과 노벨평화상 수상자, 전쟁 피해 당사자, 인권운동가 등 저명한 여성평화 운동가들이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나라를 찾아와 남북 분단의 벽은 넘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걸어서 통과할 수 있는 땅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북한 여성들과 남한 여성들을 차례로 만나 여성들이 경험한 전쟁의 상처와 고통을 들으며 눈물짓고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부를 때 벅차오르던 감정은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다.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따르면 전쟁의 피해 80%는 여성과 어린이다. 전쟁과 무력충돌의 위험성을 상시적으로 안고 살아가는 한반도 정전체제 빗장을 풀지 않으면,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6·25전쟁 민간인 피해자(사망·실종)는 남한에서만 70만 명 이상이고, 그 수가 군인에 비해 3배 많았다고 한다. 군인도 제복 입은 시민이라면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 짓는 것도 무의미하다. 피아를 막론하고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그동안 우리는 배웠다. 비싼 무기를 사들여도, 전쟁연습을 많이 해도 평화를 살 수 없다는 것, 남북관계는 일방의 흡수통일로도, 우리 민족끼리로도 풀 수 없는 복합적인 문제라는 것, 해양과 대륙, 패권 다툼의 한가운데 우리는 지략이 필요하다는 것.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정전상태에 머무는 한 한반도 평화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정전 70년, 더 이상 방치할 순 없다. 영화 ‘크로싱’에서 오색 조각보를 두르고 선을 넘는 담대한 여성들처럼 담대한 평화의 발걸음을 내딛는 해가 되길 바란다.
/최영민 대전평화여성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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