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 LA에 도착하여 4박 5일간 ?브라이스 캐니언, 자이언 캐니언, 앤털로프 캐니언, 그랜드 캐니언- 미국 서부 4대 협곡을 여행했다. 광활한 미국 서부를 버스로 이동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그동안 눅눅해진 마음을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바람 부는 벌판에 내다 널은 것처럼 마음이 가뿐해져서 돌아왔으니 말이다. 이번 여행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의미가 있었다.
첫날 오전 9시 LA에서 출발하여 캘리포니아주 남동부와 시에라네바다 산맥 남쪽으로 이어지는 모하비 사막을 달려 바스토우에 잠시 정차했다. 그리고 서남부, 네바다주에 있는 세계적인 도박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로 들어갔다. 나는 피곤함도 잊은 채 광활하게 펼쳐진 메마른 사막 풍경을 차창으로 감상하던 중 갑자기 무대 장면이 바뀐 듯 현대식 고층 빌딩이 즐비한 도시를 보자 가슴이 뭉클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라스베이거스의 신화가 생각나서였다. 하지만 7년 전에 갔을 때 카지노 도박과 환락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위락 시설 등 가족 중심의 대형 테마파크 신축이 활발해지고 있었다.
둘째 날은 유타주 자이언캐니언을 가는 일정으로 아침 6시 출발이었다.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혹시 늦잠이라도 자게 되면 일행한테 민폐를 끼쳐서이다. 잠이 깊이 들어 모닝콜을 못 들을 수도 있어서 스마트폰에 알람을 해놓았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나는 내 방에서 집결지까지 가는데도 동선을 메모지에 그려놓는 버릇이 있다. 언젠가 카지노가 있는 대형 호텔에서 내 방을 찾지 못해 호텔 내를 몇 바퀴 돌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혼자 하니까 편한 것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불편한 것도 많았다.
버스가 출발하고 아침 일출을 감상하며 자이언캐니언을 향해 드넓은 벌판을 달렸다. 유타주에 위치한 자이언캐니언은 4대 협곡 중에서 특히 남성미가 빼어난 관광지였다. 국립공원 입구에서부터 펼쳐진 산과 바위의 형태는 마치 신이 살고 있는 듯한 신비함을 느끼게 했다. 카멜 터널 뷰, 비지터 센터를 지나 차창으로 주위에 펼쳐지는 장관에 넋을 놓고 있는데 사라 브라이트만의 아름다운 노래가 울려 퍼졌다. 장엄하지만 고요한 자이언캐니언을 통과하면서 감상하던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내 마음을 더없이 풍요롭게 했다. 그러고 보면 여행도 종합 예술인 것만 같다. 아름다운 경치도 끝없이 보기만 한다면 무료해질 것이기에 말이다.
점심은 자이언캐니언을 지나 길목에 위치한 작은 목조 레스토랑에서 가졌는데 정통 미국식 뷔페라서인지 느낌이 특별했다. 점심 식사 후 브라이스 캐니언에 갔다. 이곳은 거대한 계단식 원형 분지로, 일출과 일몰 때면 후드(hoodoos)라 불리는 핑크색 바위 봉우리 수백만 개가 빛을 발하는 모습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말 그대로 이곳 역시 그 풍경이 장대했다. 우리 일행은 가이드의 안내로 조망대에서 전경을 감상하고 일부는 협곡 안으로 향하는 트레일을 따라 하이킹을 했다. 겨울에는 크로스컨트리 스키나 스노우 슈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 대개 풍경만 찍은 데 이번 여행에서는 내 사진도 많이 찍었다. 한데 셀카 찍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스마트폰을 들고 엉거주춤 서 있게 되는데 그때마다 일행인 김 선생이 조용히 다가와서 사진을 찍어 주었다. 김 선생은 자신이 교사로 재직 중 방학마다 해외여행을 갔는데 혼자여서 불편했던 기억이 있어서라고 했다.
남편이 대기업에 근무 중으로 장기간 휴가를 낼 수가 없어서 매번 혼자 갔는데 이번엔 남편과 함께 와서 다행이라면서 4박 5일간 나를 챙겨 주었다. 그런데 그분 남편은 도박을 좋아해서 라스베이거스와 라플린에서는 밤새 슬롯머신을 하고 이튿날 아침 집결지에는 옷만 갈아입고 나왔는지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버스를 타자마자 잠에 빠지곤 했다. 김 선생은 일상의 연속으로 아무렇지 않은 건지, 아니면 체념을 한 것인지 별다른 내색이 없었다. 오히려 잡기를 좋아하는 천성은 못 고친다며, 오래전 주식으로 아파트 한 채 값은 날렸다면서 빚 안 지고 사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했다. 이번 여행에서도 매번 새벽에 들어왔는데 돈 많이 잃었을 거라고 담담히 말했다. 나는 문득 성자를 보는 듯했다.
셋째 날도 아침 일찍 출발하여 애리조나주 글렌 캐니언, 파월 호수, 호스슈 벤드, 앤털로프 캐니언을 관광했다. 앤털로프 캐니언은 몇 년 전부터 미국 내에서 그 인기가 급부상하고 있는 곳으로, 입장이 허가된 지는 10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물과 바람에 의해 생성된 사암 협곡인 앤텔로프 캐니언은 Lower와 Upper로 나뉘어 있었다. Lower앤텔로프캐니언은 비가 오면 잠기기 때문에 갑자기 비가 오거나 하면 위험해서 인디언 투어가이드가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고 한다. 약 1시간가량 동굴 같은 협곡 구석구석을 둘러보는데 빛이 자아낸 자연은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오후는 마블 캐니언 등 여러 크고 작은 캐니언을 지나 애리조나주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그랜드캐니언은 미대륙의 광활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세계적인 관광지이다. 4억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콜로라도강의 급류가 만들어 낸 대협곡으로 자연의 위대함과 신비로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이곳은 미국의 국립공원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날은 바람이 너무 불어서 헬리콥터와 경비행기는 뜨지 않았다. 여행을 하는 데는 운도 따라줘야 하는 것 같다. 아무튼 강한 바람 때문에 서 있는 것조차 위험해서 예정보다 일찍 제2의 라스베이거스라고 불리는 라플린으로 향했다. 라플린은 사막 한가운데 콜로라도강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곳이다.
넷째 날은 4박 5일 마지막 날로 아침 늦게 라플린을 출발하여 캘리코 은광촌을 관광하고 주변 몇 군데 들러서 저녁에 LA로 돌아왔다. 이번 여행 중에는 은인 김 선생을 만나서 참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상대를 배려하고 나를 버리는 것, 내 아집을 버리는 것을 배웠다고 할까.
민순혜/수필가
민순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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