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래 대전 유성구청장 |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에서 대규모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원유 시추 작업을 하던 중 사고가 나면서 10만 배럴의 원유가 쏟아져 나왔다. 인근 바다는 검은 기름띠로 뒤덮였다. 이듬해 4월 상원의원 게이로드 넬슨은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제안했다. 당시 하버드대생이었던 데니스 헤이즈가 발 벗고 나서 행사를 주도했고, 그해 미국 전역에서 2,000만 명 이상이 캠페인에 참여했다. 4월 22일 '지구의 날(Earth Day)'은 그렇게 탄생했다.
최근 우리 지역의 뜨거운 이슈 가운데 하나는 원자력안전교부세 신설이다. 내국세 총액 중 지방교부세 비율을 높여 증액된 금액을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을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에 배분하는 내용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정부는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을 확대했다. 대전 유성구도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구용 원자로를 중심으로 1.5km의 지역이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으로 설정됐다. 혹시 모를 방사능 누출 사고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교육과 홍보, 대피시설 확충, 보호물품 확보 등의 책임이 유성구에 부여됐다.
이처럼 국가 사무인 원자력 시설 관련 주민보호 의무와 책임은 증가했지만, 해당 지자체에 대한 예산 지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특히 유성구는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연구원 등에 약 3만 드럼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이 보관된 지역이다. 고리발전소 다음으로 많고 경주방폐장과 비슷하다. 경주의 경우 방폐물 1드럼당 60만 원의 수수료가 지자체에 납입되지만 유성구는 전무하다. 방사성폐기물에 ‘지역자원시설세’를 부과하는 지방세법 개정도 필요한데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원자력안전교부세 신설은 최소한의 균형추이자 주민보호를 위한 안전장치이다.
원자력안전교부세 신설과 불합리한 원전 정책 개선을 위해 유성구를 비롯한 원전 인근의 23개 지자체는 원전동맹을 맺고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국회 국민청원을 진행했으나 아쉽게도 불발에 그쳤다. 여기에 실망하지 않고 23개 지자체는 지난달부터 원자력안전교부세 신설 촉구 범국민 100만 주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6월 19일 기준으로 서명 인원이 51만 명을 넘어섰다. 제도 개선의 가속 페달을 밟게 하는 힘은 시민들에게서 나온다. 유성구뿐만 아니라 대전시 전체가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다.
지역민들이 힘을 합치면 도시가 바뀐다. 그 증거도 적지 않다. 일본 고스게촌은 인구 700명의 산골 마을이다. 재생사업을 하던 시마타 슌페이는 고스케촌 촌장의 전화를 받았다. 쇠락하는 마을을 살려달라는 요청이었다. 인구는 계속 줄고 먹거리도 변변치 않아 그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그와 지역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700명 마을이 하나의 호텔로'라는 구호 아래 힘을 합쳤다. 쓰러져 가던 집이 호텔로 탈바꿈했고, 주민들은 호텔 지배인과 가이드를 자처했으며, 지역 특산물은 호텔의 최고급 요리로 변신했다. 고스케촌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서명란에 이름을 적는 것은 어쩌면 작은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은 참여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 지역민들의 작은 힘이 모여 제도와 도시를 바꾼다. 이제 대전시와 유성구가 그것을 증명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원자력안전교부세 신설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대전시민과 유성구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할 때이다.
/정용래 대전 유성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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