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사)소비자시민모임 감사·공학박사 |
세월 앞에 장사(壯士)는 없다. 우리네 인생은 세월과 끊임없는 한판 씨름이다. 아무리 돈이 많고 명예를 쌓아도, 누구나 나이가 들기 마련이다. 조금 건방져 들리겠지만, 필자는 아직 나이를 먹어 간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하루하루를 순간순간을 진정한 재미를 탐구하며,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날마다 새롭게 맞이하는 오늘이 될 수 있도록, 해뜨기 전 늘 깨어있으려 성찰한다. 매일 맞이하는 오늘 새벽이 아름다운 미래로 향하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2030 세대는 종종 성실한 월급쟁이의 삶을 조롱한다. 인터넷 속에서 주식이나 코인으로 하루아침에 어마어마한 부(富)를 거머쥔 사람들의 일화를 매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록 실패할지언정 스타트업을 차려 어린 나이에 CEO의 꿈을 이루는 방법도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큰 성공을 일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은 50대에 들어서면 적당한 벌이를 하며 굴곡 없는 하루를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한 삶은 결국 성실함의 결과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인 업무 속에서 꾸준히 도전과 응전(應戰)을 반복하며 획득한 전유물이다. 결코, 그 상승은 코인처럼 급격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지금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대기업처럼 느리고 천천히 절정에 이른다.
내 인생의 해질녘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통찰력 있고 개방적이며, 균형이 잡힌 노년을 맞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통찰력을 얻으려면, 곧 자기 인생의 중심이 되는 줄거리를 파악하려면, 비판적인 자기성찰을 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참자아(自我)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통해서만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참자아를 발견하지 않고는 만족스러운 인생의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 물론 참자아를 발견하려면 약간의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내 인생에 자양분이 되었던 것들의 궤도를 보여준다. 과거의 기억에서 얻을 수 있는 영감은 무엇일까. 지금의 내 자리에서 과거를 살펴보는 일은 내적인 여정을 위한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려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고, 나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내 믿음에 대해 탐색하는 것이다. 먼저, 건강하고 활발했던 시절에 세웠던 목표를 앗아간 육신의 쇠약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갈수록 기억력이 떨어지고, 점점 더 요구되는 인내력 외에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징후를 인정하려 한다.
자아 인식의 근원은 어린 시절에 있다. 자신의 역사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일은 사람됨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돌아보니,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은 훈육과 책임감, 성실성이 엄청 강조되던 옛 시대의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 시절이 어둡거나 우울했던 건 아니다. 기억은 세월과 더불어 순화되기도 한다. 많은 기억이, 특히 오래된 기억일수록 마치 꿈과 비슷하다. 이런 기억들은 천천히 움직이는 수채화 색감의 흐릿한 안개에 둘러싸여 있다. 바로 이런 안개 때문에 기억이 약간 변형될 수도 있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인생은 앞을 내다보며 살아야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려면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했다. 내 삶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나이가 들수록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된다. 이제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 내게 남겨진 소명(召命)이. 아름답게 나이 들기 위해서는 친밀함을 키우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쇠약해짐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경험을 시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쌓은 지식과 기술을 다른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소명에 주저하지 않으련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사)소비자시민모임 감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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