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희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 |
2022년 발간된 Market and Markets 보고서는 스마트팩토리 산업이 2021년부터 연평균 1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고자 우리 정부도 스마트팩토리 3만 개 보급사업을 추진해 왔다. 이를 통해 국내 중소·중견기업에 스마트 인프라 저변이 확대되고, IT-非IT 이종산업 간 상호협력이 가속화되는 등 새로운 산업의 탄생이 예고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글로벌 무한경쟁에 뛰어든 대기업과 국내 소재·부품 제조를 담당하는 중소·중견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의 거센 파도가 아직 버겁다. 특히 제조기업들은 스마트팩토리라는 트랜디한 가게에서 자신에게 꼭 맞는 새 옷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정부의 스마트팩토리 사업 최종목표가 자동화·제어·운영 및 공급사슬관리 등으로, 제조현장 내부의 목소리가 배제된 채 이상향만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정작 스마트팩토리 현장을 종횡무진하며 글로벌 수요에 초밀착 대응해야 하는 현장 작업자들에게는 구호에 그치고 있어 아쉽다.
3D프린팅 및 자동차 부품용 금속분말 업체인 ㈜이엠엘 박은수 대표는 "국내 제조기업은 노동자들의 땀과 노력으로 일궈낸 금자탑"이라고 말한다. 일례로 가스 아토마이징을 활용한 금속분말 제조 과정에는 약 이틀간의 장비 준비 시간부터 고온·고압에서 동작하는 장비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 그리고 양산을 위한 장비복원 시간까지 복잡한 업무가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모든 작업자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서로의 지식과 노하우를 공유한다. 즉 분말제조 분야의 히든챔피언 기업 현장은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기술고도화가 이루어지는 전쟁터이자, 작업자가 밤낮으로 R&D를 펼치는 연구현장인 것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2020년부터 기관 주요 사업을 통해 총 12개의 대표 뿌리기술을 발굴하고, 기술별 1개 이상의 중소기업에 엣지컴퓨팅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3만여 개 스마트팩토리 보급사업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작업자의 노하우'에 초점을 맞춰 산업에서 일정한 생산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사업에 가깝다.
과학계 논문에서는 흔히 주요변수(Know-What)뿐만 아니라 산업계에서 요구되는 휴먼변수(Know-when, Know-how, Know-why)까지 고려해 모든 변수를 집약한다. 이러한 결과는 실시간 평가장치와 연계해 국내 중소기업에서 기록하지 못한 방대한 노하우와 제조데이터를 기록·관리·분석할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 또 적은 양의 데이터(N<30)로도 제조데이터 예측이 가능하도록 AI 예측 알고리즘을 개발, 95%에 육박하는 신뢰도를 입증하기도 했다.
하지만 AI 알고리즘은 동일 입력 값에 대한 데이터 신뢰성을 담보로 할 뿐, 맞춤형 수요에는 즉각적인 예측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제조현장에서는 이보다 신규 수요에 대한 연구결과를 참조하고, 직감에 따른 장비 가동을 선호한다. 결국 우리 중소기업들에게 필요한 스마트팩토리라는 새 옷은 IoT 센서를 활용한 작업자 오감의 활성화, 엣지컴퓨팅의 기록·판단·예측을 바탕으로 한 작업자 인식의 확장, 그리고 이러한 오감·인지를 활용한 작업환경 메타인지(Meta-cognition) 창출인 것이다. 이는 금속분말 제조 경쟁력을 강화할 뿐 아니라 제조기술 전반에 확장·적용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시대적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면 디지털 소외계층으로 치부당하기 십상인 시대이다. 그러나 제조기업에 대해서만큼은 독일의 Industry 5.0에서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지속가능한 노동'을 함께 떠올릴 필요가 있다. 스마트팩토리는 무인커피 가게처럼 버튼을 누르면 구매자에게 커피를 배달하는 단순 업무로 치부되어서는 곤란하다. 기계 내부에서 부단히 움직이는 로봇 팔처럼 수요자 요구에 맞는 콩을 가공해 커피를 제조하는 작업자의 땀과 노력이 잊혀서는 안 될 것이다. 조인희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