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칼럼] 23. 사람이 살고 있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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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홍철 칼럼] 23. 사람이 살고 있는 ‘일상’

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 승인 2023-06-15 12:00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염홍철칼럼
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독일의 문화교육학자 프랑크 베르츠바흐 교수의 성공작 '창조성을 지켜라'의 마지막 장의 제목이 '일하지 마라'입니다. 좀 황당한 얘기 같지만,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출근 시간, 마감 시간은 이제 저녁 시간까지 잠식해오는 현상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질문은 '삶의 의미'를 묻는 말보다 더 도발적이지요. 특히 우리가 무심히 넘기는 '일상'을 재조명하고, 일상에 창조성을 접목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작고한 구본형 변화혁신경영전문가(스스로 이런 명칭을 사용)는 '일상의 황홀'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그와 공통점이 있는 베르츠바흐 교수의 '일상'에 대한 견해를 소개하기 전에, 구본형 작가의 일상에 대한 생각을 먼저 살펴봅니다.

구본형의 '일상'은 '내 하루 속에 사람이 살고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고 있었던 날은 '황홀한 일상'이라고 인정한 것이지요. 구본형은 '사소한 하루란 없다'고 주장하면서, 삶을 잘사는 것처럼 멋있는 예술이 어디 있을까라고 반문하지요. 같은 것 같지만 하나도 같지 않은, 순간순간 생성되고 무너지는 것들의 변화를 이뤄내고 싶은 것입니다. 프랑크 베르츠바흐도 같은 맥락에서 무엇보다도 변화시켜야 할 것은 바로 '일상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이 엄격히 정해져 있고, 답답한 분위기에서 일하며, 휴가 기간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여유 시간이 생기면 스포츠나 조금 즐기며, 평일에는 텔레비전을 주말에는 영화를 보고, 외벌이 남편과 전업주부라는 전통적 역할 구분을 고수하는' 일상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려면 이와 반대의 것으로 일상을 채우면 되는데, 베르츠바흐는 '좋은 삶'을 권장합니다. 좋은 삶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결코 안락한 삶이나 성공적인 삶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즉 '더욱 잘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이것도 추상적이지만, 두 사람의 핵심적 화두는 '사람'과 '창조'지요.



일상은 습관의 친숙함을 떠나 '사람이', '더욱 잘 살아가는' 방향으로 변화를 이뤄야 하는 것이 두 사람의 공통된 견해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살고 있고', '더욱 잘 살아가는' 삶은 새로운 창조(변화)가 전제되지만, 변화란 작은 문제들을 처리함으로써, 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단서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큰 문제들은 사실 본질적으로 평범하고 작은 문제들이 쌓여서 생긴 덩이일 뿐입니다.

이렇게 베르츠바흐 교수는 창조적인 삶을 강조하는데, 창조적인 삶의 첫걸음은 '자기성찰'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요. 생각도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모릅니다. 일상의 습관들이 우리의 꿈을 가려버릴 수도 있고, 스트레스 때문에 자기감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진대 '자기성찰'의 실체를 규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베르츠바흐 교수도 이 점에 관하여 많은 고민을 털어놓지요. 인간은 "자신을 방해하고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재빨리 알아차리지만, 그것을 제거하고 나면 대신 그 자리에 무엇을 채워야 할지 좀처럼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토로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설령 알게 되었다고 해도 이번에는 냉엄한 인생의 법칙에 부딪혀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괴테는 "참으로 기이한 것이 인간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불가능한 일들만 많은 것이 아니라, 가능한 일 중에서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프랑크 베르츠바흐, 재인용)고 한 것이었겠지요. 결국 '사람'과 '창조'가 좋은 삶의 해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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