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 사회과학부 차장 |
일주일 전 현충일에 있었던 일이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 녀석이 이른 아침부터 태극기를 달아야 한다고 성화다. 마치 태극기를 달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아마 학교에서 역사 교육을 받은 모양이다.
아내가 집구석 어딘가에 있던 태극기를 꺼내서 내게 줬다.
"현충일은 슬픈 날이니까 이만큼 밑에다 달아야 돼 아빠!" 잠에서 덜 깨 부스럭거리면서 태극기를 달고 있는 나에게 귀여운 녀석이 조잘거린다.
아들 녀석에게 배운 올바른 방법(?)으로 태극기를 게양한 뒤 "자~ 오늘 우리 집도 태극기 달았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자, 이 녀석은 맞은편 아파트 건물을 보며 "아빠, 근데 왜 다른 집에는 태극기가 안 달려있어?"라고 되묻는다.
"그러게, 이른 아침이라 아직 사람들이 자고 있나 봐~" 순간 당황했지만, 얼버무리며 넘겼다.
현충일인 6월 6일 오후 12시경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 모습. 총 50세대가 입주한 건물에 단 6개의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
과거를 되돌려보니, 나 역시 국경일마다 태극기를 다는 것에 소홀한 때가 많았던 것 같다. 태극기 게양을 잊었을 때도 있었지만, 태극기가 '잃어버린' 경우가 더 많았다. 쉬는 날인데, 집에 없는 태극기를 사러 굳이 밖에 나가기가 귀찮았던 것이다.
항일의병의 성지이자 만해 한용운, 백야 김좌진 등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충남 홍성군은 관내로 전입신고를 할 경우 주민에게 태극기를 증정하고 있다. 사실 이날 아침에 아내가 건네 준 태극기도 몇 년 전 내포신도시에 파견 근무 당시 전입 신고한 홍성군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때 태극기를 받지 않았다면, 그래서 집에 태극기가 없었다면, 아들에게 실망스러운 '몹쓸 아빠'가 될뻔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우연치않게 떳떳한 아빠가 된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초등학교 신입생들에게 역사교육을 하면서 태극기를 나눠주면 좋겠다는 발칙한 생각도 들었다. 대전교육청에서 관심 갖고 예산을 투입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재정난으로 이마저도 어렵다면, 자녀를 통해 희망하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구입할 수 있게 돕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태극기로 대한민국이 하나가 됐던 모습을 기억한다. 다음 국경일에는 아파트 각 층마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광경을 보고 싶다.
/김흥수 사회과학부 차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