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변호사 |
두 프로그램의 유사성은 문제가 있는 개나 애가 등장하고 전문가가 이를 직접 관찰하는 방법으로 해당 문제를 진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낸다는 점이다. 반려견의 보호자 또는 아이의 부모가 자신의 개나 아이의 문제점을 고칠 방법을 찾아달라고 요청하는 데서 프로그램이 출발한다는 것도 같다.
두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강형욱과 오은영이 제시하는 솔루션 또한 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다. 문제가 있다고 지적된 개(또는 애)는 오히려 문제가 없고 반려견 또는 아이의 보호자에게 문제가 있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는 경우도 많다.
한번은 강형욱이 이렇게 말을 한 적도 있다. 보호자가 자신이 손으로 개에게 먹이를 주면 개가 싫어하고 안 먹는 것이 문제라고 말하자, 강형욱이 "그건 보호자님이 원하는 거잖아요. 손으로 음식을 주는 것을 싫어하면 바닥에 놓아주면 되잖아요"라고 말한다. 오은영은 아이의 부모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금쪽이에게 문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한편 두 사람은 아이(또는 개)가 예민한 성향을 타고 나는 경우가 있다는 데에도 의견이 일치한다. 이러한 성향을 낮춰주기 위해서는 사회화 훈련이 필요하다는 보는 것도 동일하다. 낯선 상황을 불편해하는 아이(또는 개)에게 이에 대한 접촉을 늘려주면서 그 과정에서 보호자가 개입해 아이(또는 개)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 그러한 상황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경험을 느끼게 하고자 한다.
이 같이 양쪽의 해결책이 유사한 데에는 개와 사람 사이에 공통점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나중에 입양된 반려견이 자기보다 먼저 입양된 개의 행동을 모방하고 그 개에게 의존적인 성향을 보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마치 한 가정의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의 관계와도 유사하다.
물론 두 프로그램은 다른 점도 많다. 내가 느낀 본질적인 차이는 개와 아이에 대한 교육 내지 훈련 목표가 다르다는 점이다. 보호자가 아이(또는 개)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결과에 있어서 가장 강조되는 지점은 개의 경우에는 보호자의 통제에 따르게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목표가 되는 반면 아이의 경우에는 성장했을 때 보호자로부터 독립해 온전한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개는 보호자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보호자가 자신의 반려견을 통제하지 못해 개가 사람을 해치면 결국 개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사회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죽여야 한다는 뜻이다. 아이의 경우에는 성년이 되기까지는 부모가 보호자로서 아이를 보호하고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만, 언젠가 아이는 부모의 보호를 벗어나서 살아가야 한다.
이를 법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개의 잘못 같은 것은 없다. 개가 사람을 문다면 이는 개의 보호자인 사람의 책임이다. 법적인 영역에서 책임의 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동물의 권리를 인정하자는 법적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이 아닌 동물이 책임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아이의 경우에는 그 책임이 제한되고 일부를 부모가 일시적으로 떠안고 있을 뿐, 결국에 아이는 성년이 되고 자신의 몫의 온전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인간이 아닌 동물 역시 즐거움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 반려견은 보호자에게 공감하며 아이 역시 부모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나는 이 두 프로그램을 보면서 정서적으로 지지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상기하면서 이를 극복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도 없고 애도 없는 내가 강형욱과 오은영을 좋아하는 것은 성인이나 아이, 그리고 개도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이를 두 사람이 이해하고 있다는 점,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노력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한 이해를 좀더 키울 수 있다는 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진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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