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가 이사하면서 피해주택에 점유상태 유지를 위해 이삿짐 일부를 남겨놓고 있다. (사진=독자제공) |
▲투자 아닌 보증금이건만
지난해 6월 결혼해 대전 서구 괴정동에 신혼집을 차린 30대 여성 A씨는 자신이 곧 전세사기 피해자가 되는 게 아닐지 밤잠을 설치고 있다. 새로운 전셋집을 구해 집안의 살림을 옮길 준비를 마치고 이사차가 도착하기 하루 전날인 6월 1일 임대인으로부터 전세금 1억4000만 원을 돌려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임대인이 여러 채의 빌라를 가지고 임대업을 하는 줄 그때 처음 알았고, 부부의 전세자금이 새로운 다세대주택 건설 자본으로 쓰인 것도 그때야 알았다. 전세금 1억4000만 원 중에 1억 원은 청년 주택 임차보증금 이자 지원사업을 활용한 대출이었고, 새로 이사할 집에 잔금도 치르지 못한 상태였다. A씨는 임대인을 찾아가 항의한 끝에 5000만 원을 우선 돌려받고 급히 은행과 지인들에게 돈을 추가로 빌려 새로 전입할 전셋집에 잔금을 치렀다. A씨는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집에 짐을 일부 남겨놓고 일주일에 하루 이틀 머물면서 점유를 유지하기로 했다.
A씨는 "전세계약 해지를 3개월 전에 미리 알렸음에도 임대인은 하루 전에서야 전세금 미반환을 통보해 놀랐고, 마치 투자금처럼 이리저리 굴리다 돌려주지 못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라며 "전세사기가 우리 신혼집에서도 발생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라고 말했다.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피해 사례는 여전히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대전에서는 3월 서구 도마동에서 시작된 60억 원대 전세사기를 시작으로 피해집계 두 달 만에 피해자 322명에 전세 피해액은 322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A씨처럼 전세자금 상당액을 돌려받지 못했으나 임차 주택에 대한 경·공매가 진행되지 않고 확정일자를 받은 상태에서는 특별법이 규정한 피해자 범주에 들어가지 못한다.
대전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5월 30일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해 피해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
대전은 전세 사기가 주로 발생하는 다가구주택이 자치하는 비중이 전체 주택 중에서 높고, 학생 등 1인 거주 세대가 전국 평균보다 많은 편으로 전세금 사기 피해에 특히 취약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현재 64만 대전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는 24만 1000가구로 전체의 37.6%를 차지한다. 전국 평균 비율인 33.4%보다 높은 수준으로 대전이 1인 가구가 전국 최고 수준인 셈이다. 또 대전에서 다가구주택 비율은 전체 주택 중 33.5%로 타 지자체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실정이다. 단독주택을 헐고 다가구주택을 짓는 기술만큼은 대전 건설업계가 최고라고 평가될 정도로 최근 수년 사이 4층 이하의 주택을 짓는 붐이 일었다. 여러 채에서 모인 전세보증금으로 다가구주택을 신축해 임대업을 더욱 확장하려는 임대인의 욕구가 적은 돈으로 독립해 거주하려는 1인 세대의 희망을 먹잇감 삼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원룸촌'이 밀집된 대전 서구와 대덕구에서 전세 사기 피해가 빠르게 퍼졌고, 5월 기준 서구에서 122건, 대덕구에서 79건의 전세사기 피해가 신고됐다.
문제는 연립·다가구주택 매매가 대비 전세보증금이 역전현상을 보이는 곳이 대전에 유독 많아 피해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임대차 사이렌 정보를 보면 전국 시·군·구 중 대덕구 연립·다세대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세보증금 비율)이 131.8%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집을 팔아도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전세 위험이 커진 것이다. 대전은 대덕구뿐만 아니라 전체 평균 전세가율(100.7%)만 보더라도 이미 전세보증금이 주택 매매가를 웃돌고 있다.
대전 서구 도마동 다가구주택에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B씨는 "지난 3월 주택 임의경매 통지서를 받고서야 임대인이 전세사기에 연루된 것을 알았고, 임대인의 세금과 은행 대출금 연체금을 상환하고 나면 경매 후 세입자들에게 돌아갈 몫이 없었다"라며 "세입자들이 변호사를 선임하고 싶어도 대부분 어렵게 사는 서민들인데 사기까지 당해 대응이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믿었던 공인중개사마저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문제의 물건을 정상적인 주택처럼 알선한 일부 공인중개사가 사기에 적극 가담했다는 증언을 내놓고 있다. 이들에 대한 조사나 제재는 이뤄지지 않아 잠재된 피해가 드러나지 않았고, 돌려막기 방식으로 시간 끌기가 이어지고 있다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 5월 대전에서 임대인과 공모해 임대차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해 금융권으로부터 다가구주택을 담보로 대출이 실행되도록 꾸민 공인중개사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는데 허위문서 작성과 대출을 일으킨 때는 2018년 6월이었다. 문제의 다가구주택에 이미 1억 500만 원의 전세계약이 체결되었음에도 임대차보증금이 600만 원에 불과한 세입자 모두 월세 계약자처럼 공인중개사가 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한 사건으로 주택은 결국 2021년에서야 경매에 넘어가면서 불거졌고 매각대금은 피해자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이번 사건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국토교통부가 2월 말부터 5월까지 전세 사기 의심 공인중개사 242명을 대상으로 특별점검을 벌여 41%인 99명의 위반행위 108건을 적발한 바 있다. 무등록 중개가 41건으로 가장 많았고, 컨설팅 업체로부터 웃돈(리베이트)을 받고 세입자가 악성 임대인과 계약하도록 유도한 때도 5건 확인됐다. 일부 공인중개사는 높은 전세금을 받은 뒤 '바지 임대인'에게 소유권을 이전하는 방식의 전세 사기에 가담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대덕구의 전세사기 피해자 C씨는 중도일보를 만나 "시에서 특별 점검을 한다고 기대했으나, 결국 내려진 건 '중개대상물 확인·설명 의무 위반'에 대한 행정 조치였다"라며 "경찰 조사는 장기화되고, 이러는 사이 사기 공범 의심을 받는 이들이 증거 없애거나 빠져나갈 틈을 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라고 답답함을 표했다.
▲계약서에 특약 요구를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했던 2021년 체결된 전세계약에 만료일이 다가오는 올 연말 대전에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이 6월 4일 발표한 '금융 경제 이슈·분석'에 따르면 전세가격이 떨어지면서 전세 시세가 전세보증금보다 낮은 '역전세' 위험가구가 1년 새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비수도권 깡통전세와 역전세 위험 가구 비중은 각각 14.6%와 50.9%로 서울(1.3%, 48.3%)보다 높다. 전세 계약기간이 끝나는데 정작 전셋값이 크게 떨어지는 탓에 보증금을 돌려주는 데 어려움을 겪을 임대인이 대략 2명 중 1명꼴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2년이 지난 2023년 전셋값 하락으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문제는 걷잡을 수 없다는 최악의 상황까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악의적인 전세 사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계약서에 집주인의 채무 사실과 관련한 특약을 설정할 것을 권고한다. 계약 때 감춰졌던 근저당 사실이 발견되면 계약을 해지하고 전세금 반환을 요구할 수 있도록 계약서에 특약을 삽입하고, 집을 다른 사람에게 매도할 때도 계약을 우선 해제해 보증금 반환하는 명시하는 것이다.
이광진 대전경실련 기획위원장은 "다세대주택, 1인 가구가 특히 많은 당장 올 하반기과 내년 상반기 역전세로 인한 보증금 미반환 피해가 속출할 가능성이 크다"라며 "현재 지원책과 방안으로는 그 피해를 막을 수 없다. 사전 조사를 통해 정확한 피해 예상 규모를 파악해 대비할 방법을 조속히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임병안·김지윤 기자 victorylba@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가 이사하면서 피해주택에 점유상태 유지를 위해 이삿짐 일부를 남겨놓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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