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일이라도 사람에 따라 느끼고 생각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 바다가 그리운 물고기는 물살 따라 순행하리라. 더 너른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바다를 만나면 살아남지 못한다. 때문에 어떠한 민물고기도 바다를 알지 못한다. 바다를 모르기는 바다고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 속에서 잠행하고 유영하는 것이 전부다. 물 위로 올라 바라볼 수 있다면 이어지는 것은 죽음뿐이다. 물고기에게 바다는 전설이 아닐까? 역행하면 어떨까? 이상적인 환경을 기대하지만 오름의 끝 역시 종말이다. 발원지는 땅속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다르다. 순리에 따르던 역행하던 길이 있다. 다만, 줄기차게 도전해야한다.
폭포위로 뛰어 오르기 하면 연상되는 말이 등용문(登龍門)이다. 물고기가 용으로 변하는 어변성룡(魚變成龍)의 고사이다. <고사성어대사전>을 참고하면, 중국 황하 상류에 하진(河津)이란 곳이 있다. 다른 이름으로 용문이라 한다. 물살이 거센 폭포가 있어 물고기가 뛰어 오르지 못한다. 크고 작은 물고기가 수없이 모여드나 대부분 오르지 못한다. 만일 오르면 용이 된다. 용문은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이른다. 요즈음엔 입신출세의 어려운 관문이나 시험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심사정, 어약영일(魚躍迎日), 1767, 지본담채, 129×57.6㎝, 간송미술관 소장. |
<어약영일> 내용은 잉어가 거센 파도 속에서 태양을 향해 도약하는 장면이다. 바로 등용문을 그린 것이다. 화제(丁亥春仲爲三玄戱艸 玄齋)에 의하면 1767년 2월에 삼현이라는 사람에게 그려준 것이다. 삼현이 과거 준비생이었던 모양이다. 과거에 합격하라는 기원이 담겨있다. 거센 물결이 그 뜻을 더 강조해준다. 세상에 쉬운 일이 있으랴, 파도를 이겨내는 강한 의지, 용기와 열정이 느껴진다.
이러한 그림을 어해도(魚蟹圖) 또는 어락도(漁樂圖)라고도 한다. 조선 후기에 성행하였는데, 그림에 사람의 원초적 욕구나 현실적 기대를 담기도 하였다. 그런 의미를 특정 소재에 부여하여 그린 그림을 길상화(吉祥畵)라고도 한다. 흉하고 삿된 것을 막기 위해 그려진 그림은 벽사화(?邪畵)이다. 가내평안(家內平安), 길상벽사(吉祥?邪), 다산기자(多産祈子), 부귀유여(富貴有餘), 부부화합(夫婦和合), 수복장수(壽福長壽), 입신출세(立身出世) 등 기복과 군신유의(君臣有義), 은일자적(隱逸自適) 등 유·도가의 동양 사상이 바탕이다.
입신출세, 도약의 상징으로 잉어와 함께 날치, 망둥어, 성대 등이 그려지기도 한다. 이들은 갯벌에서 뛰어다니거나 높이 뛰어오르고, 심지어 나라 다닌다. 과거의 입신출세가 부귀공명이었다면, 지금은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거기에 하나쯤 꿈이 있어야 한다.
MZ세대의 특성으로 다양성, 창의성과 개성, 가치 추구 우선, 사회적 관심과 참여, 자유 등을 든다. 소통 등 일부 우려와 달리 자유분방하면서 포용력이 넓은 측면이 있다. 다만 미래가치보다 현재를 중시하는 것에 부연하고 싶다. 개인이나 인류 전체에 대한 이상이 하나정도씩 있으면 좋지 않을까? 미래가 있어야 한다. 꿈, 염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생명력이요, 삶의 활력소이기 때문이다. 희망을 잃거나 없는 것은 낙망이다. 도산(島山)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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