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처 :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 한국의 야사(韓國의 野史)
지난 토요일(5월 27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불기 2576년) 중생을 구제하려는 부처의 진심을 깨닫고 그 진리를 본받아 온 국민이 평화롭고 참다운 삶을 살기를 기원드린다.
신라 원성왕(元聖王) 때의 유명한 고승인 연회법사는 세상사 모두와 일체 인연을 끊고 영취산(靈鷲山) 암자에 숨어 오로지 불법을 공부하고 수도 정진하는 데에만 온 힘을 쏟았다.
세상에는 초야에 묻힌 옥(玉)일수록 그 빛이 더욱 영롱하고, 진흙에 피는 연꽃일 수록 그 자태가 더욱 아름답다고 했듯이 연회법사가 영취산에 깊숙이 은둔하고 있을수록 그 덕망은 세인들의 입을 통해 날로 높아져만 갔다.
마침 나라의 국사(國師)자리가 비어 마땅히 인물을 물색하고 있던 원성왕은 연희법사의 소문을 듣고는 연회법사를 국사로 삼으려고 신하를 보냈다. 자신을 국사에 제수한다는 어명을 받든 신하가 온다는 말을 들은 연회법사는 서둘러 영취산을 떠났다.
'일생을 수도에 정진하면서 부처님의 말씀을 쫓는 것만으로도 한평생이 부족하거늘 그깟 국사가 되어 무엇 하겠는가!'
그렇게 생각한 연회법사는 등에 멘 바랑 하나를 벗 삼아 쉬엄쉬엄 발걸음을 옮겼다. 오래도록 영취산에 숨어만 지냈으니 이 참에 세상 돌아가는 일을 구경하는 것도 그리 나쁠 것 같지만은 않았다.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을 하던 연회법사가 문수암이라는 어느 작은 고갯마루에 이르러 땀도 식힐 겸 잠시 쉬어가려고 길가의 바위에 않아 있을 때였다.
밭일을 끝내고 소를 몰고 지나가던 늙은 농부가 불쑥 연회법사를 향해 말했다.
"이름을 팔려거든 제대로 팔아야지 그렇게 도망을 가서 이름 값을 올릴 것은 또 무언가?"
연회법사는 농부의 말이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 자기 외에 또 누가 있나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름 값을 올리려고 도망치는 이가 여기 자네 말고 또 누가 있나?"
농부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하며 지나치려 하자 연회법사는 그제야 그 말이 자기에게 한 말이었음을 깨닫고는 농부를 불러 세웠다.
"여보시오. 초면에 무슨 말을 그리하오?"
연회법사가 말을 걸어오자 농부는 걸음을 멈추더니 이렇게 대꾸했다.
"이름을 파는 것도 장사라면 장사일 텐데 장사를 하려면 똑바로 해야지 그렇게 도망을 쳐서 값을 올릴 게 또 무엇이란 말이오?" 연회법사는 기가 막혔다.
"이름을 팔다니 누가 이름을 판다는 것이요?" 농부는 연회법사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제 한 몸 잘 되자고 입산수도를 할 요량이면 부처는 세상에 불법을 퍼뜨리지도 않았을 것을… 쯧 쯧."
연회법사가 뭐라 미쳐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농부는 그 말을 끝으로 소를 몰고 제 갈 길을 가 버렸다. 그 말을 들은 연회법사는 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끙끙거렸다.
'세상에 부귀공명(富貴功名)이 싫어서 도망가는 나에게 저런 시골 농부가 무엇을 안다고 수작을 부린다 말인가? 이름을 팔 것이면 국사가 되어 한세상 잘 먹고 편히 살다 가면 될 것을 내 그것을 피해 이리 종종 걸음을 치는 것인데….'
연회법사는 바위에서 일어나 화풀이 하듯 장삼 자락을 툭툭 털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그날 저녁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근처 작은 절에 당도한 연회법사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하룻밤을 묵어 갈 것을 청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연회법사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챈 절의 주지는 지극정성으로 대접하고 저녁 공양이 끝난 후에는 손수 차를 끓여 내왔다.
그리하여 두 사람 사이에는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게 되었는데 주지가 문득 연회법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곳에 오실 때 혹 문수암이란 곳을 지나치지 않으셨습니까?" 연회법사는 낮의 일이 다시 떠올라 기분이 언짢아지는 듯해서 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지나쳐 오기는 왔습니다만…" 연회법사가 말끝을 흐리는데도 주지는 재차 물었다.
"그곳에서 소를 모는 늙은 농부 한 사람을 못 보셨는지요?" 소를 모는 늙은 농부라는 말에 연회법사는 주지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보았긴 보았습니다만…" 연회법사가 또 말끝을 흐렸다. 주지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 농부가 아무 말도 없었습니까?" 연회법사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농부와의 일을 얘기하면 자신의 신분이 탄로 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 늙은 농부가 겉보기에는 그래도 범상치 않은 인물입니다. 세상의 이치를 모두 꿰고 있지요. 이 근방 여러 마을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지요. 모두들 그 늙은 농부를 일러 문수암(文殊庵)의 성인(聖人)이라 하여 문수대성(文殊大聖)이라고 부릅니다.
주지의 말을 들으면서 연회법사는 조심스럽게 깨닫는 것이 있었다.
주지가 돌아가고 빈방에 홀로 남게 된 연회법사는 조용히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반추해 보았다. 밝히지 않았는데도 첫눈에 자기의 신분을 알아본 것과 이야기하지 않았는데도 왜 먼 길을 떠나게 되었는지를 알아맞춘 것만 보더라도 주지의 말이 틀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름을 판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연회법사는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깊은 삼매경(三昧境)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농부의 말을 화두로 삼아 그 속뜻을 이해하고자 애썼다. 그럴수록 연회법사의 삼매경은 깊어 갔고, 어느 순간 혜안(慧眼)이 열리며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내가 국사의 자리에 오를 만큼 이름이 났다면 그 이름 또한 내가 낸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이름을 피해 도망을 치는 것은 그 이름을 더욱 고매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나는 너무나 자신만을 위해 불법을 공부해 온 것이다. 내가 국사의 자리를 마다하고 영취산을 떠난 것도 결국은 중생들을 구제하는 데 힘을 쏟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한 수도와 정진에만 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을 위해 스스로를 버리셨다. 내가 국사의 자리에 오른다고 해서 부귀와 공명을 쫓는 것인가? 아니다. 그 모든 것은 내 본심에 있는 것이다. 취할 것만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 된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연회법사는 바랑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새벽빛이 비추려면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그는 법당을 향해 합장을 한 뒤 문수암이 있는 쪽을 향해 또 한 번 합장을 올렸다.
그리하여 연회법사는 원성왕의 명을 받아들여 국사의 자리에 올라 성심을 다해 중생을 구제하는데 남은 생애를 보냈다.
모든 것은 본인이 생각하기에 달렸다. 부귀와 명예도 술수와 거짓도 자기 하기 나름이다. 곧 자기가 한 일에 구차한 변명은 버리고 당당하게 책임을 지면되는 것이다.
성인이 되지 못할진대 사람이 짐승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들어서 되겠는가!
장상현/인문학 교수
장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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