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 경제부 차장 |
사실 '전세'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 세계적으로 흔치 않는 부동산 제도다. 저렴한 주거고정비를 원하는 임차인과 무이자로 고액을 빌려 재투자를 할 수 있는 임대인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전세제도는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금융위기 속에 전세 사기로 인한 피해자까지 발생하면서 전세제도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제도 자체가 불안정한 것은 사실이다. 이미 국내에서는 KDI(한국개발연구원)에서 1993년에 전세폐지론을 주장했고, 국토연구원에서도 2000년에 보증금 상환 문제가 심각해져 대책이 필요하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코로나 시대 저금리에 유동성이 풍부해 지면서 집값과 전세 가격이 폭등했다. 무주택자를 위해 전세대출 한도를 크게 늘리면서 문제를 키운 것. 이런 가운데 지난해부터 미국의 고금리 정책에 따라 국내 기준금리도 폭등하니까 집값이 폭락하면서 '깡통전세'가 등장했다. 무자본 갭 투자를 했던 사람들이 무너지면서 전세 사기가 시작됐다.
국토부가 지난해 9월부터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인 점을 봐도 정부가 전세제도를 현행대로 운행하면 안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용 중인 제도를 하루 아침에 폐지하는 것은 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전세 거주자는 2020년 기준으로 국민의 15.5%(약 325만2000가구)에 해당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전세금은 총 1058조 원에 달한다.
정부도 전세 사기 피해를 위한 제도 손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번 일로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인식하고, 더 좋은 선진형 주택공급 정책이 계속 나오면 자연스럽게 퇴장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상문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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