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불습유(路不拾遺)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는다.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가 강성해진 데에는 공손앙(公孫?, 商?이라고도 함)이란 사상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군현제와 토지, 조세, 징병 제도 등 새로운 법 시행하기에 앞서 백성의 신뢰를 먼저 쌓았다. 백성이 따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처음엔 불평하였지만, 잘 지켜 10년이 지나자 길가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에서 유래한, 원전의 도불습유(道不拾遺)와 같은 말이다. 도적도 없고 풍요로워졌다고 전한다. 정치가 바르면 사회가 질서 있고 삶이 윤택해진다. 풍속이 아름다워져 남의 물건을 탐하지 않는다. 곧 태평성대를 이르는 말이다.
개인이나 국가 모두 지향하는 바가 있다. 크게는 이상세계이고, 가까이는 태평성대이다. 혼란 없이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다. 그 상태 그대로 머무르고자하는 안주와는 다르다. 서로에게 해 끼치지 않는 세상이다. 부단한 욕망으로 점철된 인간 속성 탓에 쉽지 않다. 아름다운 심성을 갖게 하는 것으로, 절대 평가의 태평성대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상대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봉건시대 사회적 약자에게 태평성대가 가당키나 하며,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시대에 따라 다를 뿐 아니라 다분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어마어마한 것도 아니다.
조선시대 태평성대의 귀감은 중국 요순시대였다. 신화시대이니 창작이 더 많을 수 있겠으나,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여겼다. 그때 불렸다는 <격양가(擊壤歌)>를 살펴보자. 격양가는 땅 두드리며 부르는 노래란 뜻이다. 풍년 들어 농부가 태평세월을 구가한다. "해 뜨면 일하고 / 해 지면 쉬고 / 우물 파 물마시고 / 밭 갈아 먹으니 / 임금의 힘이 내게 어찌 있으리오(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何有於我哉)" 저마다 하고 싶은 일 하며 임금의 치세를 느끼지 못하는 세상, 정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세상, 그러한 정치가 위대한 정치라 노래 부른다.
착정이음(鑿井而飮)과 경전이식(耕田而食)을 합하여 착음경식(鑿飮耕食), 경전착정(耕田鑿井)이라고도 한다. 우물 파서 마시고 밭 갈아 먹는다는, 같은 뜻이다. 그 시대, 평화로운 풍경으로 번화한 거리의 안개 낀 흐릿한 달(康衢煙月), 배 두드리고 땅 구른다(鼓腹擊壤), 실컷 먹고 배 두드린다(含哺鼓腹)라 이르기도 한다. 세간에 회자되는 것처럼 배부르고 등 따시면 되는 것이다.
그림에는 60세 이후에 사용한 의도인(毅道人) 관서가 있다. 일종의 농경도라 할 수 있으나, <일출이작>이란 화제가 말해 주듯 <격양가>를 그린 것이라는 것이 필자 생각이다. 복사꽃이 만발한 늘봄의 아침 풍경이다. 들판에 슬그머니 엉덩일 내민 구릉에 나이든 소나무가 무성하고, 그 가운데 초가가 한가로이 서있다. 노란색으로 칠해 놓은 부분은 보리밭인지 유채밭인지 구분이 어려우나 그림에 생기를 더한다. 쟁기질 하는 남정네와 씨 뿌리는 아낙이 더 없이 평화롭다. 태평성대가 이 아닌가?
그런 태평성대가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정육의 그림 속 사람여행>을 참고하면 이렇다. 중국 명나라 때 장거정(張居正)은 '임현도치(任賢圖治)'와 '간고방목(諫鼓謗木)' 두 가지를 제시했다. 바른 인사와 소통이다. 어진사람 임용하여 다스리고, 간언하는 북과 비방하는 나무를 설치하였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누구나 알지 않는가? 덕이 높고 재능이 출중한 전문가는 최고의 성장 동력이다. 요임금은 자신을 황제로 만들어 준 사람은 발탁하지 않았다. 참다운 인재를 임용,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선민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누구나 진언할 수 있도록 문밖에 북을 걸어 두었다. 소통의 장을 활짝 열었던 것이다. 그 옆에 나무도 하나 세워 두었다. 마음대로 자신의 잘잘못 지적토록 하는 글 판이다.
갈등조장에 온갖 비위(非違)로 점철된 우리 정치계, 한심하기 짝이 없다. 도불습유처럼 대다수 국민은 성숙해있다. 정치만 과거에 매몰 또는 퇴보하고 있다. 정치가 국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 걱정하는 나라, 실로 안타깝다. 정치인들이여, 왜 정치하는지 한 번쯤 돌아보시라.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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