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
브람스는 스승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연모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산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클라라는 브람스보다 14살 연상입니다. 슈만이 사망한 이후에도 브람스는 클라라를 일방적으로 연모하였고, 클라라가 사망할 때까지 그를 보살폈지요. 브람스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사랑을 알고 있었고, 그 사랑을 평생 갈구하였지만, 클라라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을 지켜나갔지요.
사실 브람스는 클라라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한 바도 있지요. 그는 "사랑하는 클라라, 내가 당신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당신을 위해 헌신하고 싶은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중략) 나는 당신을 '나의 클라라'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사랑하고 있습니다."라는 편지를 썼지요. 이런 시기에 슈만이 사망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브람스에게 기회가 온 것으로 생각했지만, 브람스는 오히려 클라라로부터 멀리 떠나고 맙니다.
이러한 클라라에 대한 사랑은 아마도 브람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그것이 주옥같은 명곡을 남기게 된 것 같습니다. 따라서 브람스의 친구인 요아힘의 좌우명인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는 사실상 브람스에게 가장 부합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브람스의 생각이 그의 피아노소나타 3번 5악장에 그대로 녹아있는 것입니다.
저는 연주회 이후 '자유와 고독'이 제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습니다. 그런데 이문재라는 시인은 이미 오래전에 <자유롭지만 고독하게>라는 시를 썼더군요. 이문재 시인은 이 시에서 "여럿이 있을 때 조금 고독하고, 혼자 있을 때 정말 자유롭게"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시작으로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그리하여 자유에 지지 않게/ 고독하지만 조금 자유롭게/ 그리하여 고독에 지지 않게"라고 자유와 고독을 정리했습니다.
인간은 자신과 타인 사이에 있는 결코 연결될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하지요. 홀로 삶을 책임져야 하는 고독, 홀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고독이 숙명적인데, 그 고독이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는 역설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자유와 고독의 만남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자유와 고독의 만남은 '혼자 걷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걷는 주체는 나이고 누구로부터도 간섭받지 않습니다.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자유지요. 걷는 것은 이토록 자유롭지만,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고독을 자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의 고독은 외로움과는 다르지요. 외로운 시간은 나를 옭아매지만, 고독한 시간은 나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군중 속의 자유가 아니라 고독 속의 자유를 느끼는 것입니다.
자유와 고독은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공존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매일 15킬로미터 정도,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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