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무의식과 접경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원시적인 공포가 존재한다는 정신분석학의 주장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 공포로 인해 인간은 극히 불안정한 존재가 됐다. 불안이란 놈은 무의식의 심연 아래에 도사리고 있다가 언제든 불쑥 불쑥 솟아올라 인간을 공격한다. 그 중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불안은 죽음에 대한 불안이다. 유한한 삶.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숙명. 하여 인간은 무엇이든 매달리고 믿고 싶어 한다. 종교가 탄생한 이유다. 종교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모든 곳에 영향을 미친다. 역사적으로 종교는 자기 희생, 타인에 대한 봉사 등 고귀한 가치와 진리를 추구했다. 하지만 인간이 저지르는 최악의 행위와 종교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경우가 많다는 걸 우리는 보았다. 멀리는 십자군 전쟁, 가톨릭 포교라는 명분으로 아메리카 원주민 대학살 그리고 유고 내전, 이슬람 과격단체의 9·11 테러 등. 종교의 이름으로 악행이 저질러지는 현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당장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유대인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폭력을 보라.
정말 종교 그 자체가 문제인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종교의 본질에 대한 함정에 빠지면 속수무책이다. 유일신을 신봉하는 종교는 필연적으로 분쟁을 일으킨다. 배타적이고 편협하고. 나 아니면 너라는 이분법. 뭔가 낯익지 않은가. 이 논리가 종교가 아닌 곳에서도 활개치고 있다. '태극기 부대'와 '개딸'. 국정농단과 죄상이 밝혀져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직을 파면해도 태극기 군중은 박근혜에 대한 지지를 끈질기게 이어갔다. 사회병리적 현상이라고밖에 설명이 안되는 대중적 우익세력의 기이한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광신도들에게서 보이는 심리적 징후 아닐까. 에리히 프롬의 '근대화의 역설'이란 것이 있다. 전통사회의 구속과 억압에서 해방됐으나 불안감이 엄습해 다시 절대적 권위체에 복종하려는 성향 말이다. '개딸'도 다르지 않다. 극렬 정치 지지세력의 내 편에 대한 무조건 옹호와 반대세력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한다. 여야를 넘나드는 팬덤 정치와 종교가 다를 게 뭐가 있나.
한국은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치르고 근대화라는 압축 성장을 이뤘지만 부작용도 만만찮다. 성공에 대한 집착과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과도한 강박증으로 불안감도 배가 됐다. 이런 사회에서 종교의 힘은 더욱 강고해졌다. '이단'과 '정통'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도심에 자리잡은 왕국같은 대형교회와 나날이 거대해지는 사찰이 증명하지 않나. 거기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다. 인공지능(AI)이라는 판도라의 상자 앞에서 여기저기서 섬뜩한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장담컨대 종교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정명석 같은 악마에 현혹되고 천당가는 티켓을 끊으려 헌금을 바치고 부처 앞에서 복을 기원하고 점집이 성행할 것이다. 지난 주말 대둔산에 갔었다. 돌아오는 길에 금산 진산을 지나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녹음이 우거진 산들이 예사로 안보였다. 진산은 JMS 본부가 있는 곳이다. 철옹성 같은 그 곳에서 지금도 추악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사실 신은 인간이 만들었다. 정말 신은 인간을 구원하는가? 팬덤은 정치를 이롭게 하는가? <지방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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