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윤 전 학장 |
따라서 도시의 영역들은 우리의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전환점이란 가능성을 믿고 현실적인 변화의 증명이 된 도시의 장소를 생각해 본다. 지중해를 바라보는 프랑스의 세뜨라는 도시는 언덕을 지니고 있고 지중해를 내려다보는 이른바 해변의 묘지로도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기력에 좋다는 굴 요리가 유명하며, 시인 폴 발레리의 고향이기도 하고 그의 묘지가 바로 이곳에 있다. 폴 발레리의 시집 '해변의 묘지'는 지중해를 바라보는 죽은 자들의 도시를 암시하며, 산자의 공간 바로 옆에 같은 눈높이로 바다를 바라본다. '바람이 분다…살아야겠다…날아가라 온통 책장들이여…' 해변의 묘지에 일부 글귀에서 바다를 통해 도시에 토해내는 그의 언어들이 지붕 아래 살아가는, 자연에 대해 상대적인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작은 해변 도시 세뜨는 작은 만큼 아름답고 작지만 커다란 부호로 우리를 달래주고 있다. 또한 근대건축의 대가인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지중해가 바라보이는 로크부륀(Roquebrune Cap Martin)을 그의 마지막 종착지로 삼았다. 롱샹교회와 라 투레트 수도원, 아마도 맨 첫 번째 소위 주상복합 사례라 해도 무리가 없을 마르세유의 유니떼 다비따시옹(공동주택), 인도 찬디갈의 선도적 신도시계획과 국회의사당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념비적인 건축 유작을 남긴 그도 마지막 선택은 작은 오두막(카바논)과 이곳에 자신의 묘지를 남겼다. 로크부륀 마르땡의 묘지와 르코르뷔지에의 다섯 평 오두막집이 바로 그가 자신을 위해 남긴 마지막 최소의 공간이다. 호방한 젊은 시절 르코르뷔지에가 제시한 3백만을 위한 현대도시와 빛나는 도시(빌라 라호즈)계획은 지금 지구를 아파트로 덮는 도화선이 되었고 유니떼 다비따시옹은 공동주택의 전설을 넘어 두 세기의 시간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그가 잠든 이 도시의 관심 사항은 역시 바다를 보는 묘지이다. 마치 섬 안의 물처럼 도시 안에 같이 둔 해변의 묘지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는 곳이 되었다. 어느 날 아침, 꽃을 든 노부인을 따라가니 바로 이웃한 가족의 묘지에 꽃을 두는 것으로 그녀의 일과가 시작되고 있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너무도 뚜렷한 우리의 정서가 상대적으로 조금 차갑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문명의 물 동아리인 지중해를 둘러싸고 페니키아의 해양 문화, 페르시아의 제국시대, 그리스의 학예, 로마의 정치, 비잔틴의 종교시대가 차례로 이어지는 지중해 지배의 시대를 통해 많은 폴리스(도시국가)가 이루어졌고 건축은 흙으로 시작해 돌을 세움으로 웅대한 성소와 장제전이 되었다. 인간의 존망이 신의 영역에 있을 때와 르네상스의 인본주의로 바뀌는 시기까지 여전히 도시의 배아는 성소였으며 유토피아(이상도시)의 새로운 신념을 구현하기 전까지 도시는 여전히 그 모습을 바꾸지 않았다. 우리의 도시가 자동차와 그 기계들이 머무는 장소를 건축안에 제공하기 위해 열심히 도시를 가꿨지만 점점 삭막해져 가는 도시의 진정한 온기는 아직 채워지지 않고 있다.
가슴에 담고 싶은 도시, 벽이 좀 없는 도시. 가보고 싶은 도시, 걸어보고 싶은 도시, 다시 돌아오고 싶은 도시, 그곳에 쉬고 싶은 도시, 태어나 살고 싶은 도시, 그림처럼 가슴에 박히는 도시, 그런 도시를 조금씩 열어보자. 생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폴 발레리의 얘기를 빌려 우리 도시를 위해 나 자신이 먼저 생각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도시를 말해보자. / 김병윤 대전대 전 디자인아트대학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