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창 세종시 시민안전실장 |
현재를 두텁게 살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 누구보다도 잘 엮어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름 아닌 공직자일 것이다. 조국과 후손을 위해 과거의 고유한 전통과 정신을 되살리고 미래를 앞당겨 창조산업을 뒷받침하는 것이 공직자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사명감에 불타는 공직자와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라는 국민의 단합된 노력 덕택에 한국은 압축성장을 이루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중앙정부·수도권 중심의 발전은 지방의 쇠퇴, 청년층의 좌절 그리고 인구의 소멸로 귀결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수도권 과밀은 극심한 지역 불균형과 심화하는 농촌몰락의 다른 말이었다.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했는지 모르지만, 아름다운 전통을 되살리고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효율을 중시하는 산업 일꾼을 육성하는 데는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개성과 문화를 중시하는 창의적 일꾼을 길러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추세라면 지구에서 가장 빨리 사라질 나라가 한국이란다(옥스퍼드대 인간 문제연구소, 2006).
2305년 즈음에는 한국인은 남자 2만 명, 여자 3만 명 밖에 남지 않고(유엔 미래보고서 2, 2009), 2750년에는 결국 완전히 소멸한다고 한다(국회입법조사처, 2014).
경제도 암울한데, 올해 1월 31일 IMF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일본의 1.8%보다도 낮은 1.7%라고 전망했고, 지난 1월 무역수지 적자는 126억9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였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전철을 밟게 될 거라고 걱정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수많은 전문기관이 내다보고 있는 한국의 인구소멸과 경기침체를 우리 공직자들은 정말로 심각한 문제로 여기고 있는가?
어느새 공직자들이 과거를 되살리며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없이 그냥 분주해지기만 한 게 아닐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제자리에 맴돌면서 그냥 변죽만 울리고 있는 건 아닐까?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지팡이는 물건이 아니라 몸의 일부가 된다고 한다.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라 쓰러지더라도 위험을 무릅쓰면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기 시작한 이후에야 지팡이가 몸으로 변할 것이다. 그만큼 절실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이와 달리 우리가 인구의 소멸, 지방의 쇠퇴, 청년층의 좌절, 미래 먹거리의 부재 등을 전혀 절실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다름 아닌 공직자가 바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고 현재를 아주 얄팍하게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세종시 건설도 마찬가지다.
이젠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아니라 당당하게 수도라고 외쳐야 한다.
더 나아가 세종시는 한국의 미래를 앞당기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이 도시에는 자율주행·드론·사이버보안 등 첨단산업이 선보이고 문화·관광 등 창조산업이 일어나야 하고, 전국 각지에서 최단 시간에 접근할 수 있고, 새로운 교육과 쾌적한 라이프스타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한국의 수도 세종시에서는 행·재정 특례가 한발 앞선 지방분권이 현실이 돼야 하고, 사교육과 입시로 내몰린 아이들이 마음껏 끼와 개성을 발휘하도록 교육자유특구가 앞당겨져야 한다.
국회·정부청사 가까이에 KTX역이 들어서야 하고, 금강과 중앙공원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캔버라 발전에 결정적 전기를 마련한 로버트 멘치스(Robert Menzies) 호주 총리는 수도는 호주를 대표하고 호주 국민의 정신을 나타내야 한다고 하면서 '훌륭한 수도(Worthy Capital)'를 외쳤다.
실제 그는 캔버라에 그리핀 호수를 완성했으며 국가 삼각지대(National Triangle)의 기초를 닦았다.
멘치스 총리의 안목은 호주라는 국가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이어졌고 국경을 넘어 한국전쟁에 호주군을 파병함으로써 세계평화에도 이바지했다.
마찬가지로 세종시 건설도 다음 세대에 자랑스러워야 하고 세계에 내놓을만해야 한다. 무엇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앞당기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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