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 교수 |
학생들이 질문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학생 전체로 범위를 넓혀 방어할 생각은 없지만, 최소한 우리가 함께 공부하는 강의실에 그런 진단이나 주장은 적용되지 않는다. 수업 시간마다 학생들의 질문은 끝이 없다. 선생에게 묻든, 발표한 동료 학생에게 던지든 교실의 여기저기서 질문하려는 손들이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무엇은 무엇이냐는 유형의 단순한 질문은 많지 않다.
학생 아무개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선생이 설명하기를 막대한 비용을 들여 취재한 뉴스를 포털에 무료로 제공하는 전략적 실수를 한 후 고갈된 재원을 해결하는 방편의 하나로 현재 대부분 언론이 기사형 광고를 게재한다고 했는데, 광고성 기사 수입만으로 언론사가 생존할 수 있는가?’ 선생의 설명이 정교하거나 충분하지 못해 생긴 질문이었다. 학생들의 좋은 질문은 선생의 설명이 부족했던 부분을 채운다.
중간고사를 치른 현재 전공과목에서 질문한 학생은 수강생의 96%이다. 1학년 학생들이 주축인 교양과목의 경우 질문한 비율은 60%인데, 지난 2학기 같은 교양과목에서 질문한 비율은 학기말 기준 90%였다. 최근 자발적으로 주제 발표를 하고 싶은 학생들의 신청서를 마감했다. 3분간 자기주장을 펼치고 나면 빗발처럼 쏟아지는 학생들의 질문을 감당해내야 하는 발표다. 전공과목 수강생 중 80%의 학생이 주제 발표를 신청했다.
학생들이 질문하지 않는다는 진단은 타당하지 않다. 학생들은 곧잘 질문할 뿐 아니라 동료 학생들의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것도 당당히 감당하고 있다. 질문하고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무릇 누구든지 어려운 일이겠으나, 어려운 '처음'을 겪어야 잘하는 다음이 있다. 우리 학생들이 그걸 보여주고 있다. 질문하는 힘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생각하는 연습을 자주 하면 질문의 힘을 기를 수 있을까.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이래 30년간 학생들에게 '생각쪽지'를 받았다. A4 한 페이지짜리, 대략 1,800자의 글이다. 지난 학기 데이터를 보면 전공과목 수강생의 96%, 교양과목의 경우 87%가 자발적으로 생각쪽지를 작성했다. 대부분 매주 1개씩 썼다. 수업에서 다룬 주제를 자기 생각으로 정리해 보거나 질문하고 싶은 내용을 기록한다. 물론 프라이버시를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으므로 선생에게만 말하고 싶은 내밀한 이야기를 적을 때도 있다.
무역학을 전공하는 김두기는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와 1955년 흑인 인권운동의 한 계기가 된 틸 소년 이야기를 썼다. 그는 언론의 보도가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이 사람들에게 있다며 어떠한 환경에서든 "언론을 진정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시민들의 용기가 아니겠는가"라고 물었다. 언론학을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은 왜 한국의 정치인들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발언을 반복하는지, 동시에 한국의 언론은 왜 그러한 발언을 대서특필하는 보도 관행을 되풀이하는지 '생각쪽지'에서 질문한다. 생각쪽지를 쓰며 스스로 묻고 강의실에서 공개적으로 동료 학생들과 묻고 답한다. 생각은 질문하는 힘을 기르고 좋은 질문은 자신과 사회의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공적인 선거로 선출된 권력은 주권자의 눈을 대신하는 언론에 권력 집행의 현장을 '보여주어야'하고 주권자의 대리 입인 언론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야 한다. 그러한 구조와 작동의 원리가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요체다. 언론의 질문에 답하지 않으려거든 공직선거에 출마하지 않아야 한다. 작금에 중앙정부가 언론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둥, 어떤 지방정부는 아예 몇몇 언론의 접근을 차단하고 질문 자체를 받지 않는다는 둥 어수선하다. 자유민주주의의 운영원리에 맞지 않는다.
언론에 묻는 질문거리가 있다. 언론인은 성실하고 정교하고 예리하게 질문할 준비를 갖추고 실제 그렇게 질문하는가. 누구를 위해 질문하고, 질문해야 할 때 정작 침묵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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