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마음 가꾸기, 강세황의 <청공도(淸供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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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마음 가꾸기, 강세황의 <청공도(淸供圖)>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3-05-1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사람이 일만하고 살 수는 없다. 경제활동 이외의 자유로운 시간이 필요하다. 휴식도 취하고, 취미활동, 자기관리, 사교도 해야 한다. 여가(餘暇)라고 부르지만, 실은 남는 시간이 아니다. 하세월 기다린다고 찾아오지 않는다.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선현들은 무엇으로 여가를 즐겼을까? 김홍도의 <포의풍류도>, 장승업의 <백물도권> 감상에서 그림에 나타나는 기물을 통해 일련의 마음 가다듬기를 음미해본 일이 있다. 그에 따르면 독서와 고동소화(古董書? : 오래된 골동품, 글씨, 그림 등의 수장애완물)의 감상이 주였으며 풍류도 빼 놓을 수 없다. 문밖에 나서면 뜨락을 가꾸어 즐겼다. 뜰, 원림(園林), 정원(庭園)이라고도 한다. 원림은 자연에 약간의 인공을 가하거나 집안으로 끌어들인 것이요, 정원은 뜰이나 집주위에 하는 조경이란 의미가 강하다. 미관상 또는 실용 목적이다. 서양은 기하학적, 동양은 자연친화적 자연스러움을 우선하여 조성한다.

지금도 일부에서 뜨락을 꾸미고 가꾸며, 고동서화 또는 문화예술을 즐긴다. 대부분은 여가가 없다고 한다. 즐길 줄 모른다는 것이 안타깝다. 또 하나 아쉬움이 있다. 진지하지 못하고 너무 늦었다, 비직업적이라 강조하며 대충하려는 것이다. 30년이 짧은 시간이 아니다. 퇴직하고 30년이 지난 어느 노인의 말이다. '자랑스럽게 은퇴한 이후,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 기다린 것이 비통하고 후회스럽다.' 더 훗날 후회하지 않도록 계획 세우고 실천한다 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때라 하지 않는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과거 비직업적 화가가 그린 그림이 문인화이다. 결코 직업화가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지향점이 서로 다르다. 외려 조선시대에는 문인화가 더 대우받았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누구나 즐겼다. 미술뿐인가? 글도 마찬가지다. 중인, 평민이 대거 참여한 것이 여항문학(閭巷文學)이다. 여타 예술분야도 다르지 않다. 악기 하나정도는 누구나 다룰 줄 알았으며, 노래, 무용 등 풍류를 즐겼다. 품격을 높이는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격에 고저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서로 다른 품격이 있을 뿐이다.



창작 활동은 하지 않더라도 감상하고 즐겼다. 고동서화를 즐기면 인간 내면이 정화된다고 생각했다. 인류 구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서재에 향 피우고 밝은 햇볕을 받으며 서안(書案)위에 옛 서화 올려놓고 감상하는 것을 문방청완(文房淸玩)이라 한다. 옛 사람 사이에서 최고 호사로 대우 받았다.

여의
청공도, 강세황, 비단에 담채, 23.3×39.5㎝, 선문대학교박물관 소장
그림은 강세황(姜世晃, 1713 ~ 1791)의 <청공도(淸供圖)>이다. 강세황은 시·서·화 삼절(三絶)로, 당시 화단 '예원의 총수'로 알려진 인물이다. 작가이며 평론가인 것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사전>에 의하면, 한국적 남종문인화풍(南宗文人畵風) 정착에 크게 기여하였다. 진경산수(眞景山水)의 발전, 풍속화와 인물화의 유행, 새로운 서양 화법의 수용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습기(習氣)와 속기(俗氣)가 없는 글씨와 그림을 추구했다.

<청공도>는 서재에 필요한 각종 문구류를 그린 작품이다. 화제에 의하면 '무한경루의 청공을 그린 그림(無限景樓 淸供之圖, 豹翁)'이다. 무한경루는 강세황이 관직에 나가며 남산에 마련한 가옥의 당호이다. 10여 년 기거한 문예 창작소로 지인과 모임을 열었던 예술 공간이다. 학문을 논하기도 하고 고동소화의 수집·감상도 했다. 맑고 고상한 완상취미가 발현되던 곳이다. 청공은 맑은 생활에 이바지 하는 물건으로 문구류를 이른다.

서안 위에 서적, 벼루, 필통과 붓, 연적, 책, 종이, 여의(如意)가 놓여 있다. 간단하게 묘사했지만 허접한 물건이 아니다. 책은 포갑에 싸여 있고, 벼루는 연지가 깊고 두툼하며 받침대인 연대위에 올려져있다. 연적은 작은 숟가락이 걸쳐있는 수증승(水中丞)이다. 바라보기 왼쪽에는 별도의 받침대 위에 매화 분재와 괴석이 놓인 화분이 있고, 오른쪽에는 바닥에 지팡이가 있다. 여의(如意)는 좀 생소하다. 불구의 하나로 승려가 설법이나 법회 때 위용을 갖추기 위해 들던 것이다. 이를 문인들이 즐겨 휴대하게 되었는데, 신체의 가려운 부분을 긁는데 사용하였다. 요즈음 효자손에 해당하는 것으로 마음먹은 대로 되다란 의미가 있다. 길상여의(吉祥如意), 만사여의(萬事如意), 사사여의(事事如意) 등 상서로운 뜻이 부여되며 곁에 두는 장식용, 감상용 물건이 되었다.

작품은 작가 자신의 이미지 조성 과정이요 산물이다. 강세황 역시 특유의 이미지 창출에 천착했던 인물이다. 스스로 묘비명을 쓰기도 하고, 70세에 그린 <자화상> 자찬문에 "머리엔 오사모를 쓰고, 몸에는 야복을 걸쳤으니, 마음은 산림에 있되 이름은 조정에 있음을 보이도다. 마음속에 책 수천 권을 숨기고, 붓으로 오악을 흔들지만, 사람들이 어찌 알겠는가? 스스로 즐길 뿐이다"라 했다.

향유하는 예술과 기물이 자신의 품격과 아취를 더해주고, 밖으로 표출된다. 문예적 소양과 심미적 취양, 문화적 위치를 알려준다. 마음이 곧 우주이지만, 책상 또한 공부하는 사람의 소우주이다. 세월은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우주는 뜻대로 가꿀 수 있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최종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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