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봉 관장 |
내가 처음 고향을 떠난 것은 태어나고 자란 세종을 떠나 공주로 중학교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때는 고향을 떠난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다. 중학교에 다니던 공주를 떠나 대전으로 고등학교에 갔을 때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내 마음속에서는 공주도, 대전도 다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정작 고향을 떠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대전을 떠나 서울로 이사했을 때다. 그런 뒤에도 '운명의 힘'은 나를 이곳저곳으로 끌고 다녔다. 마침내는 광주에서 25년 가까이 살기까지 했다. 이렇게 떠돌아다니며 사는 동안 내게는 무수한 경험이, 무수한 지식이 축적됐다.
고향과 관련해 세종, 대전, 충남을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낡은 것, 늙은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낡은 것, 늙은 것의 대명사로 흔히 '꼰대'를 말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도 나는 자주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는 한다. 그때마다 고향인 세종, 대전, 충남으로 돌아와 살면서 나는 내가 어느새 꼰대가 되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반문을 하고는 한다.
꼰대는 누구인가? 젊은이들에 따르면 '라떼'를 자주 말하는 사람이 꼰대라고 한다.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나도 어느새 라떼를 자주 말하는 꼰대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꼰대 중에도 아주 긍정적이고도 신선한 늙은이도 없지 않겠지만.
누구는 라떼를 자주 말하는 꼰대가 되면 젊은이들이 아주 싫어한다고 한다. 그때마다 나는 또다시 내게 묻는다. 내가 꼭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늙은이가 되어야 하나. 젊은이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어떤가. 그리하여 가끔은 다시 또또 묻는다, 라떼를 자주 말하는 꼰대가 된들 어떠리.
라떼와 꼰대를 거부하는 늙은이들의 실제 모습은 어떤가. 그런 늙은이들은 지금 젊은이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사는 것 아닌가. 더불어 나는 또 생각한다, 그동안 내가 뭘 잘못 살아왔나. 그동안 좋은 선생, 훌륭한 스승이 되고 싶기는 했는데……. 이런 꿈도 나 개인의 욕망에 쫓겨 나 개인만을 위해 산 것인가.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라떼는 과거의 한때를 가리키기도 한다. 하지만 좀 더 범위를 넓혀 생각하면 라떼는 과거의 모든 때를 의미할 수도 있다. 라떼가 과거의 모든 때를 가리킨다면 라떼라는 말로 상징되는 것은 역사 자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라떼를 부정하고 비판한다는 것은 과거의 모든 때, 곧 역사의 모든 때를 부정하고 비판하는 것이 된다.
생각이 이쯤 이르면 나 자신이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민족의 역사나 국가의 역사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나 자신의 개인사는 어떠한가. 혹시라도 나 개인의 역사가 젊은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것이었나. 역시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마다 대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온 것이 나 개인의 역사이지 않은가.
대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온 것은 나 개인만의 역사가 아니다. 이 땅의 역사 중에는 사리(私利)를 좇아 살아온 사람보다 공리(公利)를 좇아 살아온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돌밥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돌보다는 밥이 많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라떼를 말하는 것이, 꼰대가 되는 것이 크게 부끄러울 것도 없다. 라떼를 말하는 꼰대가 실제로는 자랑스러운 존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주 라떼를 말하는 것이, 꼰대가 되는 것이 젊은 사람들에게 훨씬 긍정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라떼를 말하는 웬만한 꼰대에게는 열 권짜리 백과사전 한 세트 정도는 들어 있기 마련이다. 어떤 특별한 꼰대에는 시립도서관 한 채가 들어 있을 수도 있다.
사람은 늘 배우는 자이다. 좋은 것은 좋아서 배우고 나쁜 것은 나빠서 배우는 것이 배우는 사람의 자세이다. 누가 라떼라고 말하는 것을, 꼰대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랴.
/이은봉 시인·대전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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