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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페이,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페이코 등 각종 페이들이 국민의 지갑을 대신하고, 무형의 돈이 빛보다 빠르게 오간다. 특히 올해 3월 중순 애플페이가 국내 상륙해 흥행몰이하면서 기존 사업자들은 간편결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전략적인 동맹을 맺어 서비스를 강화하거나 아예 폐지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상에서 현금이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새로운 변화와 시스템은 따라가기가 버거울 정도다.
먼 옛날 원시시대의 물물교환부터 고래 이빨(피지 제도), 조개껍데기(고대 중국), 카카오 콩(아스테카 문명), 그리고 현대사회의 지폐, 신용카드, 전자화폐, 암호화폐까지….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이 원하는 물건과 거래하기 위해 수많은 지불 수단을 만들고 바꾸고 사용해왔다.
그중 필자의 삶에서 제일로 꼽는 혁신은 '플라스틱 머니' 시대를 연 신용카드였다. 신용카드가 처음 생겨난 것은 1880년대 유럽이다. 이때는 상인이나 기업이 개별적으로 자신의 고객에게 물건을 주고 일정 기간 대금 지급을 미뤄주기 위해 사용됐다. 오늘날처럼 여러 곳에서 두루 사용이 가능한 개념의 신용카드는 1950년대 미국의 한 사업가가 창안한 것이 시초다. 그는 식사 후 밥값을 내려다 수중에 현금이 없자 곤욕을 치렀는데, 이 경험을 바탕으로 고안해 낸 것이 바로 다이너스 카드다. 당시 종이로 만들어진 이 카드는 회원사로 가입한 레스토랑 몇 곳에서만 쓸 수 있었는데 이후 여러 기업이 이 사업에 뛰어들면서 현재와 같은 형태로 발전하게 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용카드는 1969년 7월 신세계백화점이 발급한 고객카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주로 은행 중심의 카드 영업이었지만, 뒤이어 LG·삼성 등 대기업이 사업에 뛰어들고 IMF 이후 정부의 신용카드 소비촉진 정책으로 신용카드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게 된다. 신용카드가 한창 호황이던 이 당시에도 필자는 카드보다 현금 위주의 소비생활을 고수했다. 외출할 땐 항상 현금이 들어있는 두툼한 지갑과 그 지갑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가방이 필수품이었다.
인터넷뱅킹이 주류로 자리 잡았을 때도 컴퓨터를 켜고 로그인을 해야 하는 귀찮음과 '해킹당하면 어쩌나'하는 걱정 속에 텔레뱅킹만 이용했다. 지금은 일상화된 앱카드도 출시되고 수년이 지나서야 겨우 두 개만 설치해 사용 중이다. 이것도 아이를 양육하면서 온라인쇼핑이 잦아져 쓰기 시작한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도 여전히 실물카드나 현금 사용만 고집했을 것이다. 이렇듯 신문물을 수용하는데 '늦음뱅이(Laggards)'인 필자도 지금은 현금을 쓸 일도 볼 일도 거의 없다. 생각해보니 지갑을 들고 다닌 지가 언제인지도 까마득하다. 스마트폰과 카드 한 장만 있으면 외출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갈수록 돈 벌기는 어려워지고 쓰기는 쉬워져, 아끼고 모은다는 게 쉽지 않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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