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숙 수필가 |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한 장발장이었지만 미리엘 주교는 그의 죄를 묵인하고 거기에 은촛대까지 주어 장발장의 삶을 바꾼다. 이처럼 한 사람의 선행은 다른 사람의 앞날을 바꿀 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를 다룬 작품이 '레미제라블'이다.
또 다른 영화 '빠삐용', 이 영화 '빠삐용'은 자유를 향한 끝 없는 도전자인 빠삐용이 자신의 무죄를 부르짖으면서 마침내 탈옥에 성공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금고털이였던 빠삐용은 살인죄라는 누명을 쓰고 다시 종신형을 받게 된다. 그와 검사가 나눈 대화를 보면, 빠삐용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소." 검사, "맞다. 너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너는 살인보다 더한 죄를 저질렀다." 빠삐용은 억울하다는 듯 "그게 뭡니까?"라고 대꾸했다. 검사가 단호하게 말한다. "인생을 낭비한 죄다." 빠삐용은 고개를 떨구며 부르짖는다. "아 아~나는 유죄다."
빠삐용에게 죄에서 자유를 안겨준 규칙, 그것은 이안류의 규칙이었다. 악마의 섬으로 늘 거칠게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반복되는 규칙을 발견하고, 그 규칙에 몸을 실어서 빠삐용은 드디어 악마의 섬을 탈출하여 자유를 얻게 된다. 그에게 자유를 준 '이안류의 규칙'은 그에게는 자유의 세계로의 탈출구였다.
이제 시선을 돌려 우리의 삶을 바라보자. 이 세상에는 가난과 질병, 바이러스 재해들로 넘쳐난다. 연일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 죽음의 소식은 영화 속 죄수들이 겪었던 끔찍한 일상과 별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의 년수를 다하는 날까지 탄식과 괴로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우리의 삶에 대해 '답도 없는 인생', '출구 없는 감옥'이라고도 말한다.
우리들의 삶에서도 빠삐용처럼 누명을 쓰고, 또한 장발장처럼 먹고 살기 위해 도둑질을 하며 감옥에서의 삶을 허비한 것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러한 삶을 살면서 무죄라고 말하지만 실은 유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인생을 낭비한 죄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강한 것 같지만, 사실 얼마나 잘 흔들리고 깨어지고 넘어지는 존재들인가?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가? 먹고 살기 위해 도둑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유흥비로 도둑질을 일삼는 이들을 보지 않는가?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게 연약하고 악한 길로 빠지기 쉬운 악한 존재인 우리 자신과 싸운다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다.
'자유', 오직 자유를 향한 인간의 절박함이 결집된 명작으로 두 작품을 손꼽고 있지만 여기에서 얻은 교훈은 우리 인간에게 정신의 위대한 힘과 가장 힘든 도전에 직면하였을 때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상기시켜준다. 장발장은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가족을 위해 다시 도둑질을 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용기, 그 용기야말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인생은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하듯 인생길에서 미리엘 신부님 같은 의인을 만나 살아가는 우리가 된다면 세상은 변화되지 않겠는가 생각해 본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1813~1855)는 "기도는 신을 변화시키지 않지만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킨다"라는 말을 했다. 신(神)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감으로 느끼며 가슴으로 하는 뜨거운 기도가 우리 스스로를 바꾼다는 교훈이다. 코로나19로 찌들었던 삶에서 벗어나자. 장발장처럼 그것이 죄인줄 알면서도 다시 도둑질을 한 것처럼 가족을 위해 다시 일어서자. 그래야 인생을 낭비한 죄의 대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김명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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